2024년 7월 11일 목요일

보이저호와 2차 전지: 혁신과 안전의 경계

 1977년 8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 공군기지에서 보이저 2호가 발사되었습니다. 보이저 2호가 발사된 지 15일 뒤인 1977년 9월 5일에는 보이저 1호도 발사되었습니다. 비록 보이저 2호가 먼저 발사되었지만, 경유지가 많아 직통에 가깝게 날아가는 보이저 1호보다 태양계를 벗어나는 시간은 늦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발사는 늦었지만, 태양계를 먼저 벗어나는 보이저에게 1호라는 앞 순번을 붙였습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나는 행성 정렬은 주기적으로 발생합니다. 2024년 8월 28일에도 수성, 화성, 목성, 천왕성, 해왕성, 토성이 하늘에 일렬로 정렬될 예정입니다. 만약 8월 28일 밤하늘이 맑다면, 가까이 모여있는 행성들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저 1호는 이러한 행성들의 중력을 이용해 속도를 높이며 날아갔습니다. 태양계 5개 행성이 일직선에 놓이면서 중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행성 정렬은 175년마다 한 번씩 일어납니다. 보이저 1호는 이 현상을 활용해 30년 걸릴 비행 기간을 8년 만에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와 통신에 편도 20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를 날고 있습니다.



보이저 1호와 2호의 주요 문제는 전기였습니다. 천왕성까지만 가도 햇빛이 지구의 4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해 태양전지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보이저는 이를 3차 전지를 사용하여 해결했습니다. 3차 전지는 연료를 주입받아 스스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연료전지입니다. 우주 공간에서는 중력과 마찰력이 거의 없어서 큰 힘이 필요 없지만, 우주선의 장비를 구동하려면 전력이 필요합니다. 보이저 1, 2호는 플루토늄 238에서 나오는 방사선에서 전력을 얻는 원자력 3차 전지를 사용했습니다. 플루토늄 238은 반감기가 87년으로 오랜 기간 사용이 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NASA는 기능을 하나씩 줄이며 전기를 아끼고 있습니다.



보이저 1호는 2013년 9월 13일 태양계를 벗어났습니다. 3차 전지가 아직 작동 중이어서 보이저와 통신이 가능했으나, 2023년 11월 보이저 1호에 고장이 발생했습니다. 탐사선에 탑재된 메모리 반도체 중 하나가 고장난 것입니다. NASA의 엔지니어들은 고장 난 메모리를 우회하여 명령이 전달되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했고, 고장 수리에 성공했습니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호들은 현재도 3차 전지가 작동하면서 지구와 교신 중입니다. 원자력 3차 전지는 오랫동안 사용이 가능하지만, 실생활에 사용하기에는 위험합니다. 소련에서는 무인등대를 돌리기 위해 원자력 전지를 사용했지만,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폐기된 원자력 전지들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원자력 3차 전지를 사람이 없는 우주 공간으로 보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2차 전지는 방사선이 나오지는 않지만, 화재의 위험이 큽니다. 한국과 중국이 주력으로 쓰고 있는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 모두 리튬과 산소가 기본 구성 요소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화재 진압 방법은 산소 공급을 차단해 불을 끄는 것이지만, 2차 전지는 자체적으로 산소를 포함하고 있어 화재 진압이 어렵습니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여러 겹으로 포장되어 있어 물을 뿌려도 발화 지점까지 도달하기 힘듭니다. 전기차에 불이 나면 불을 끄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전기차를 물속에 완전히 담그는 방법 정도가 대책이 됩니다.



2022년 2월 16일, 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차 4천여 대와 전기차 300대를 실은 자동차 운반선이 대서양에서 불이 났습니다. 차량 가격만 4억 달러가 넘는 고급차가 많이 실려 있어 화재 진압에 최대한 노력했지만, 불을 끄지 못하고 침몰했습니다. 화재 원인은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로 조사되었습니다. 2023년 7월에도 차량 3천 대를 실은 자동차 운반선에 화재가 발생해 배가 전소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화재도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유럽 해상안전청(SMSA)은 "대다수의 선박 화재 사고는 리튬이온배터리가 포함된 화물 운반 중에 발생했다"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전기차는 불을 끄기 힘들고, 자동차 운반선은 차량들이 촘촘히 선적되어 있어 연쇄 발화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기차 운송 비율이 높은 현대 글로비스는 자동차 운반선에 불이 나면 소화 덮개를 씌우고 화재를 진압하는 모의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소화 덮개는 1500도에 버틸 수 있게 특수 코팅된 내화 섬유로, 불이 난 차량에 덮어 산소 유입을 막아서 불을 끄고 열과 연기를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다른 차들로 화재가 확산되기 전, 전기차 화재 초기 단계에서 대응 가능한 방식입니다.


전기차가 늘어나면 아파트 주차장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비율이 높아지면, 자동차 운반선과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명이 지난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ESS도 화재 위험이 높습니다. 2차 전지의 충방전을 반복하다 보면, 음극 표면에 덴드라이트라는 물질이 쌓이게 됩니다. 덴드라이트가 분리막을 찢으면 음극과 양극이 쇼트를 일으키고, 인화성이 높은 전해액과 반응해 화재 및 폭발이 발생합니다. 교통사고 등의 충격으로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이 찢어져 화재로 이어지는 현상도 덴드라이트에 의해 일어납니다.



전기차로서 수명이 다한 오래된 배터리의 경우 내부에 덴드라이트가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래된 배터리를 좁은 공간에 밀집해놓는 ESS 구조상 한두 개의 불량 배터리에서 불이 나면 화재가 쉽게 커집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에 설치된 ESS에서 39건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ESS 화재가 자주 일어나자 전기안전공사는 ESS 화재 원인 조사단을 구성해 사고 원인 파악에 나섰습니다. 조사단은 “사고 발생 초기, 셀 전압 미세 변동 후 급격한 배터리 전압 변동과 온도 상승이 발생했다"라고 원인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배터리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조사단의 결정을 수용해 문제 제품을 리콜 처리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ESS는 한 번 화재가 나면 남김없이 전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화재 원인을 밝히기 힘듭니다. ESS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순간 온도가 800℃ 이상 올라가며 여러 셀들이 열을 받아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 화재 진화가 어렵습니다.


화재 위험이 높다 보니, 주거지 인근에 ESS 저장소를 설치하는 것이 쉽지 않아 ESS 확대 속도가 늦춰지고 있습니다. 전기차와 ESS 등 2차 전지 사용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화재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차 전지 화재방어 설비와 전기차 전용 소방용품 등 화재 대비 부분에도 시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기차와 ESS가 확대되면서, 화재와 관련한 이슈들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분리막이 없어 화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전고체 배터리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기차 전용 소화기 등 안전장비 시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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