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요일

담배회사도 찬성한 영국의 획기적 금연법, 그 이유는?

오늘은 영국의 혁신적인 금연 정책에 관한 내용을 포스팅해보려고 합니다. 과거 한국과 영국 모두 높은 흡연율을 보였습니다.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내에서도 흡연이 허용되었고, 심지어는 재털이가 비치되기도 했습니다. 1998년 한국의 성인 흡연율은 35%에 달했으며,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영국의 경우 성인의 절반 이상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담배의 유해성이 알려지자 두 나라 모두 금연 정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의 성인 흡연율은 17.7%로 영국의 15% 수준보다 높습니다. 영국은 2030년까지 흡연율을 5%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영국 의회는 2009년 이후 태어난 국민에 대해서는 평생 담배 구입을 금지하는 획기적인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원에서 383대 67로 압도적 찬성을 받았고, 상원 통과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영국은 세계 최초로 담배 없는 세대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https://www.ytn.co.kr/_ln/0104_202404171439412011



흥미로운 점은 이 법안에 대하여 담배회사들도 찬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담배회사들이 전자담배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보건당국은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95% 덜 해롭다고 홍보하며, 일반담배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반면 전자담배에는 낮은 세금만 부과합니다.



결과적으로 영국에서는 일반담배 판매가 크게 제한되는 반면, 전자담배는 편의점 진열대에 자유롭게 전시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국 정부는 금연 정책과 함께 전자담배를 일종의 대체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전자담배 시장 점유율이 2017년 2.2%에서 2021년 12.4%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영국의 사례를 보면 향후 한국에서도 담배 없는 세대 육성과 전자담배 활용 정책이 도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국식 금연 정책은 기존 산업에 새로운 대체 영역을 열어주고,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입니다. 산업계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공중 보건 증진을 이뤄내는 현명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국 정부도 이러한 영국식 정책을 참고할 만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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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0일 월요일

금리 인하 국면에 주목받는 보험사와 워런 버핏의 전략

https://www.yna.co.kr/view/AKR20240516030800009?input=1195m



 워런 버핏이 비밀리에 보험사 처브 주식을 사들인 것이 공개되었습니다. 워런 버핏이 뜬금없이 보험사 주식을 매수하는 이유를 추정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2년 9월, 새로 영국 총리가 된 트러스는 430억 파운드의 감세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감세안에는 세금만 줄이는 내용만 있었을 뿐, 줄어드는 세금으로 인한 재정 보전 방안은 전혀 없었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87503&plink=ORI&cooper=NAVER


시장은 이를 정부가 "빚내서 돈을 엄청 쓸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결국 국채를 대량 발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뭐든지 흔하면 가격이 싸지고 귀해지면 비싸지는 논리가 여기에도 적용됐습니다. 영국이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국채가 흔해지고, 국채가격이 내려가면서 국채금리가 오르리라는 것이 시장의 합리적인 예상이었습니다.

실제로 마이너스 0.156%였던 국채 금리가 일시에 4.398%로 급상승했습니다. 영국 국채금리가 오른 것은 곧 국채 가치가 떨어져 기존 국채 보유자들이 손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새로 국채를 산다면 4.398%의 높은 이자를 받지만, 기존에 1%도 안 되는 낮은 이자의 국채를 가진 이들은 앉아서 평가손실을 보게 되는 셈입니다.



미국 국채 금리 역시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 은행의 채권 손실이 540조 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은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장기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어마어마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에서도 연기금을 제외하고 장기국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 보험사들입니다. 한국은행 추산으로 국내 보험사들이 336조 원 규모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숫자를 하나 알려드리면, 한국은행은 금리가 1%p 오르면 보험사의 채권 평가손익이 36조 원이나 변동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기준금리는 2022년 3월 0.25%에서 5.5%까지 무려 5.25%나 올랐습니다. 따라서 미국 기준금리가 0.25%에서 5.5%로 오르면 국내 보험사들의 채권 평가손실은 189조 원까지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왔으며, 이는 한국은행이 직접 계산한 수치입니다.



물론, 보험사들은 자산과 부채를 어느 정도 맞춰놓고 있습니다. 채권에 평가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 채권에서 나오는 이자로 보험금을 지급할 돈은 일정 부분 매칭시켜 놓은 상황입니다. 이는 아파트 실거주자가 보유한 아파트 시세가 폭락했더라도 계속 거주할 예정이라면 당장은 문제가 없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보험사가 큰일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보험사들은 채권 평가손실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해도 괜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보험사가 금리가 오르면 다른 부분에서 이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보험사들이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에 받아놓은 고금리 보험상품들입니다. 금리가 높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보험사에서 판매한 저축성 보험 상품의 최소 보장이율이 7%대에 달했습니다. 이런 고금리 저축성 보험의 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해 저금리 시기에 보험사는 큰 손실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에 보험계약자들도 이런 이점을 알기에, 고금리 저축성 보험 상품은 절대 해약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23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시장금리가 많이 상승하자, 과거 고금리 저축성 보험들의 손실이 줄어들고 일부는 이익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채권 평가손실이라는 마이너스 요인과 고금리 보험 손실이 감소하는 플러스 요인이 동시에 발생한 것입니다.

보험사들은 금리 변동에 따라 마이너스와 플러스 요인이 공존하므로, 이런 변동이 생기더라도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리 상승 때 플러스 요인이 없고 채권만 많이 보유한 곳은 금리가 빨리 내려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진 중국, 일본과 개별 기업으로는 미국 지방은행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들이 겪는 채권 평가손실이 SVB 은행 파산 사태처럼 미국 지방은행 위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SVB 은행은 저금리 시절 포트폴리오에 많이 편입한 미국 국채가 금리 상승으로 평가손실이 커지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일반 상황이었다면 SVB는 보험사처럼 채권을 만기 보유로 계정 변경하며 버텼을 것입니다. 하지만 뱅크런 소문이 돌자 예금 인출에 대비해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고, 장부상 평가손실이 실제 손실로 확정되며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채권을 많이 보유한 곳들은 저금리 시절 매수 채권의 평가손실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한국 보험사들은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과거 고금리 보험 상품 가입 고객들이 해약하고 많이 빠져나갔습니다. 보험사들은 채권 손실에 대해 만기 보유로 회계처리를 바꿔 시간을 벌었고, 고비용 보험이 빠져나가면서 수익구조가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내려가면 보험사 수익이 종합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채권 손실을 당장 인식하지 않도록 회계처리를 바꿨다고 해서 손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채권 손실도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과거 고금리를 보장한 기존 보험이 대거 해약으로 이탈한 상태에서 채권 손실이 줄어들면 수익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워런 버핏이 작년부터 비밀리에 매수해오다 최근 공개한 처브도 보험회사입니다. 

보험계약자들은 매달 보험료를 내고 몇 년 혹은 몇십 년 뒤 사고나 사망 시 보험금을 받습니다. 보험사는 이 자금을 몇 년에서 몇십 년간 장기로 운용해야 하는데, 장기 채권만큼 적합한 수단이 없습니다.  

금리 상승세가 멈추고 하락하기 시작하면 보유 채권의 평가손실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버크셔가 투자를 발표한 대형 보험사 처브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1,400억 달러 중 1,200억 달러가 채권에 투자되어 있어 84%가 채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다양한 보험사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버크셔는 1960년 보험사 가이코(GEICO)를, 1990년에는 제너럴 리 재보험사를 인수했습니다. 처브에 대한 투자 역시 워런 버핏이 잘 모르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부합합니다.

과거 워런 버핏은 보험사 엘러거니를 116억 달러에 인수하며 '플로트'를 이용한 투자를 언급했습니다. 플로트란 보험료 납부 시점과 보험금 청구 시점 사이에 보험사가 일시적으로 보유하는 자금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책임준비금이라고 부릅니다. 워런 버핏은 이 플로트를 자금조달 비용이 적게 드는 저비용 투자 방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처브 투자 역시 워런 버핏이 익숙한 보험업에 대한 투자이며, 장기적 상향세와 낮은 주가 등 그의 투자 원칙에 부합합니다. 워런 버핏이 일본 기업에 투자한다면 보험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워런 버핏의 처브 투자는 금리 인상이 멈추고 인하 국면에 들어서면서 장기 채권 보유 기업에 투자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 판단입니다. 아직 이런 분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참고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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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7일 금요일

에너지 안보의 새로운 화두, 우라늄 자원 장악을 향한 갈등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514_0002733904&cID=10101&pID=10100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우라늄 수입금지법에 서명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의미를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푸틴 대통령과 같은 고향 출신인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우드킨과 함께 용병 그룹 바그너를 설립했습니다. 바그너라는 이름은 독일 작곡가 바그너를 좋아하는 우드킨의 콜사인에서 유래했습니다.

바그너 그룹은 "푸틴의 살인 용병"이라 불리며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푸틴의 숨겨진 힘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첫 번째 개입 지역은 수단이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서방의 경제제재에 시달리게 되자 이를 버텨내기 위해 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수단의 금광이 타깃이 되었습니다.

수단은 세계 10위의 금 생산국으로 다르푸르 지역에서만 연간 50톤 이상의 금이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바그너 그룹이 수단 쿠데타를 지원해주며 이 금광의 채굴권을 얻었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이 나오기 시작하자 금값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바그너 그룹과 푸틴 정권 간에 수단 다르푸르 금광에서 나온 금의 소유권을 둘러싼 이권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프리고진은 그 금을 사용해 용병을 확장하려 했지만, 러시아 군부는 그 금이 러시아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결국 2023년 6월 24일, 프리고진은 무장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수단 금을 둘러싼 이권다툼이었습니다. 그는 금을 가로채려던 쇼이구 국방장관의 축출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끝내 프리고진은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푸틴에 반발하던 프리고진은 암살당했지만, 바그너 그룹은 현재도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 활발하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곳이 아프리카의 쿠데타 벨트입니다. 아프리카 쿠데타 벨트는 기니,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수단 등 6개국을 일컫는 말로, 군부 쿠데타가 일상인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사헬지역은 사하라 사막의 남쪽 경계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헬지역이 쿠데타 벨트가 된 이유는 이 곳이 사하라 사막과 초원 지대의 경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헬지역 위쪽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이고, 사헬지역 역시 물 부족이 극심해 농업이 힘든 초원 지대입니다. 농업이 어려워 식량 자급자족이 힘들어지면서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인종적으로 아랍계와 다양한 아프리카 부족들이 복잡하게 섞여 살고 있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민간 정부와 ISIS 등 이슬람 무장세력 간의 세력다툼이 일상이 되면서, 주민들은 이슬람 무장세력과 잘 싸울 수 있는 군부를 지지하게 되었고 군사 쿠데타가 빈번해졌습니다. 사헬지역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있는 동시에 냉전 시절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에 호의적입니다. 문제는 이곳에 상당한 자원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2023년 9월, 니제르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니제르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 프랑스의 간접 영향권에 있었고, 프랑스군 2천여 명이 주둔하며 프랑스 방송도 송출되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군부는 즉시 프랑스 방송을 차단하고 군사협정을 파기했습니다. 니제르 군부 자체는 약체였지만 국민들의 지지와 바그너 그룹의 지원이 있어 프랑스의 군사개입은 이뤄지지 않았고, 프랑스는 대사관을 폐쇄하고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2023년 12월, 니제르 군부는 EU와의 군사협정도 파기하고 러시아와 재개했습니다. 미국 역시 니제르를 포기했는데, 미군은 2018년 니제르 아가데즈에 1억 1천만 달러를 들여 '201 공군기지'를 건설해 ISIS 등을 공격하는데 이용해왔습니다. 하지만 니제르 군부의 협정 파기와 철수 요구에 바이든은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전선을 확대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니제르에서 철수 준비를 하는 사이 러시아는 100명의 고문단과 무기 지원을 시작했고, 2024년 5월에는 미군 기지에 러시아군이 들어와 일시적으로 동거하게 되었습니다. 쿠데타 성공 후 니제르 군부는 프랑스에 우라늄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며 프랑스를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라늄 자체는 희귀 금속은 아니지만 고품위 광산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현재 우라늄 함량이 가장 높은 지역은 카자흐스탄이고 세계 최고 품위 광산은 캐나다에 있습니다.



우라늄 가공 과정은 채굴 후 불순물을 제거하고 U3O8을 분리해 우라늄 농도 75% 정도의 Yellow Cake를 만듭니다. 이를 가스 형태로 만든 뒤 원심분리기로 농도를 높이고 펠렛 형태로 지르코늄봉에 포장하면 우라늄 연료봉이 됩니다. 니제르는 우라늄 함량이 높지 않아 세계 생산 점유율이 4%에 불과하지만, 유럽 전체 수입량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니제르가 최대 우라늄 수입처입니다.  



원전 의존도 75%에 달하는 프랑스로서는 니제르산 우라늄 수입이 중단되면 큰 문제가 됩니다. 2021년 기준 유럽과 프랑스의 주요 우라늄 공급선은 니제르, 카자흐스탄, 러시아 순이었습니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수많은 제재를 가했지만 우라늄은 예외였는데, 이는 러시아산이 저렴한 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지금도 러시아산 우라늄을 수입 중이지만 니제르가 있어 공급 중단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며 러시아와 공조하게 되면서 우라늄 공급이 끊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러시아와 니제르 두 공급선이 막히면 카자흐스탄만 남게 되는 셈입니다. 프랑스는 니제르 군부의 우라늄 공급 중단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2024년 2월 26일, 파리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를 주최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상군 파병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지만 공식 합의는 없었다며, 러시아의 패배를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해 파병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프랑스가 이렇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니제르 군부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이 자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14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인데, 원전 발전 비중이 75%에 달하는 상황에서 니제르산 우라늄 공급이 중단되면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역시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고 있어 우라늄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 비중이 오히려 19%에서 32%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미국 의원들은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 금지 법안을 제출했지만,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제는 프랑스가 니제르산 우라늄을 가공해 수출하고 있어 니제르 공급이 중단되면 미국의 대안도 마련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산 우라늄은 가격 경쟁력이 매우 높아 미국도 국내 생산보다는 러시아 제품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시 수입 우라늄 중 캐나다에 이어 니제르산 비중이 높아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니제르 군부 쿠데타 이후 우라늄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우라늄 수요는 2040년까지 6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공급은 변동성이 심한 상황입니다. 중국도 신규 원전 42기 건설을 위해 우라늄 사재기에 나서며 가격 상승에 한몫했습니다. 중국 국영업체들이 니제르, 나미비아, 카자흐스탄 등지의 우라늄 광산 지분을 인수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라늄 부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 금지를 발표한 것이 의아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보면 2028년 1월까지는 한시적으로 수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방의 우라늄 농축업체인 우렌코와 오라노의 능력 확대를 기다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도 이들 기업에 대한 지원을 발표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2028년부터 본격적으로 러시아산 수입을 차단하고 서방 공급선으로 전환할 계획인 셈입니다. 따라서 바이든의 이번 발표는 즉각적인 효과보다는, 러시아가 반발해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원전 신규 건설로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공급선이 불안정해지면 우라늄 가격 상승 등 큰 여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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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6일 목요일

건강검진 바로알기, 효과적인 검진 고르는 법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국가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병을 일찍 발견해서 치료하면 치료 결과도 좋고 합병증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병원에서 말기 암 치료를 받아도, 초기에 암을 발견해서 적당한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만 못합니다. WHO는 건강검진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효과가 좋은 병이어야 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둘째, 검사비가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정확도가 높아야 합니다. 혈압이나 혈당은 큰 비용이 들지 않고 쉽게 잴 수 있으며, 혈압과 혈당을 제대로 쟀으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검사가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80년에 공무원들에게 국가건강검진을 처음 시작했고, 대상자도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건강 유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지만, 국가건강검진의 실제 목표는 보험급여의 지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병이 늦게 발견되면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가는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별 건강검진 항목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X-ray 촬영을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고,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인지장애 검사가 추가됩니다. 한국만 촬영을 하고 있는 흉부 방사선검사(X-ray)를 다른 나라들이 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2020년 건강검진에서 흉부 방사선 촬영을 받은 사람은 1,445만 명이었지만, 그중 폐결핵으로 확진된 사람은 200명에 불과했습니다. 즉, 1명의 결핵환자를 발견하기 위해 99,998명이 검사를 받아야 했던 셈입니다. 일반 건강검진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이 X-ray 검사입니다.

X-ray 검사는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혈액 암 발생 위험을 약간이지만 증가시킵니다. 200명의 결핵환자를 발견했지만, 1,445만 명은 쓸데없는 방사선 피폭을 당한 셈이라, 종합적인 가성비를 감안해서 X-ray 검사를 하지 않는 나라가 많습니다. X-ray 검사를 빼면 일반 건강검진의 비용을 30% 가까이 절감할 수 있지만, 그만큼 검진기관의 수입도 줄어들게 됩니다. 현재 국가건강검진에서만 매년 1,200억 원의 예산이 X-ray 검사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습니다.



암 검진에서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특히 유방암 검진에 사용되는 유방촬영에서 정확도가 낮게 나오고 있습니다. 국가검진에서 유방암이 의심된다고 정밀검사를 의뢰한 사람 중 실제 유방암으로 확진되는 경우는 0.6%에 불과합니다. 1000명 중 994명은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검사 결과를 받고 불안에 떨면서 확진검사를 위해 돈을 써야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을 졸여야 합니다. 대학병원의 유방촬영 정확도가 높은 것을 보면 검진기관이 제대로 촬영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학적 근거가 있어도 대충 촬영하고 무성의하게 확인하면 검진 의미가 없어집니다.

당뇨병 검사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검진에서 2년마다 실시하는 당뇨병 검사는 공복혈당만 검사합니다. 공복혈당이 126mg/dL 이상이면 2차 검사도 공복혈당 검사를 한번 더 하는데, 혈당조절에 문제가 있으면 혈당이 들쑥날쑥할 수 있습니다. 혈당에 문제가 생기면 공복혈당 외에 당화혈색소 검사를 추가해야 합니다. 당화혈색소가 6.5% 이상이면 공복혈당이 기준치 이하라도 당뇨병 진단이 내려집니다. 1차에서 공복혈당이 높으면 2차에서 공복혈당과 당화혈색소를 모두 검사하면 매년 50만 명의 당뇨환자를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X-ray 검사 등의 예산을 줄이면 이런 개선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미국 질병예방 특별위원회(USPSTF)는 우리나라 국가건강검진 항목 중 이상지질혈증, 신장기능검사, 빈혈검사, X-ray 검사 등 4개 항목에 대해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권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지질혈증 중 고콜레스테롤 혈증 선별검사는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으며, 신장기능검사 결과가 양성이더라도 건강 개선을 위한 특별한 치료법이 부족합니다. 빈혈검사도 조기진단과 치료의 이득이 확실치 않습니다. 

골다공증 검사는 65세 미만 폐경기 여성에게는 효과가 낮아 65세 이상 여성에게만 권장됩니다. X-ray 검사는 청소년기 척추측만증 조기발견 목적으로 1회성으로 하는 정도를 추천합니다. 특히 20~30대 건강검진은 비만도와 혈압측정을 제외하면 검진으로 인한 이득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국가검진 항목의 의학적 근거를 검토하는 기관은 질병관리청입니다. 한국도 10년 전부터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의 권고사항과 유사한 연구결과를 내왔습니다. 

2018년 보건복지부는 국가건강검진 항목 조정을 위한 TF를 구성했습니다. TF에서는 X-ray 검사를 포함한 부적절한 검진 항목 삭제에 동의했지만, 단체들의 이권 문제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TF는 의학적 근거 없는 검사 항목을 빼면 일반 건강검진 비용의 80%를 건강보험에서 절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건강검진은 모든 질병을 대상으로 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가성비를 고려해 표적 질환을 중심으로 합니다. 표적 질환은 1) 조기발견 가능 2) 예방 시 이익 큼 3) 무증상기 존재 4) 치료 가능한 질환입니다. 

진단만 하고 치료법이 없으면 의미가 없기에, 이런 부분을 종합해 의학한림원의 권고문이 나옵니다. 이외에도 개인이나 기업에서 별도로 건강검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검진 시 주의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11월과 12월에는 건강검진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1년의 절반 넘는 검진이 두 달에 집중되어 시장통에서 검사를 하게 되고, 검사 결과의 성의도 없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평생 한 번은 뇌 MRA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MRI는 단면만 보는 것이지만, MRA는 뇌출혈 원인이 되는 뇌동맥류 유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뇌동맥류가 터지면 1/3은 즉사하고 1/3은 평생 장애를 안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혈관 접근으로 동맥류를 잘 묶을 수 있습니다.

반면 갑상선 초음파는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갑상선암이라도 5년 생존율이 100%에 가깝고 자라는 속도가 느려 다른 장기 전이 위험이 적기 때문입니다. 괜히 발견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진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40대 이상이라면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경동맥은 목 옆을 지나가는 동맥으로, 이곳을 보면 전체 혈관 상태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경동맥에 혈관 두꺼워짐이나 지방 침전물이 있다면 다른 부위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추가 검사를 통해 조기 치료가 가능합니다. 경동맥 초음파는 10만원 내외의 추가 비용으로 할 수 있습니다.

70대 이상 노인이 고관절 골절을 당하면 1년 이내 사망률이 20% 이상 올라가는 치명적 부상이 됩니다. 활동 불가로 인한 근육 손실과 여러 부작용 때문입니다. 따라서 50세 이상은 골밀도 검사를 해서 골다공증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골다공증 판정 후 대책이 없었지만, 최근 프롤리아라는 골다공증 치료제가 효과가 좋습니다. 6개월마다 주사를 맞으면 척추/대퇴골 골절 위험을 큰 폭으로 낮출 수 있고, 건강보험도 적용됩니다.

결국 건강검진은 단순히 검진받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건강상태와 연령, 성별에 따라 적정한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기가 있는 곳에 그물을 던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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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4일 화요일

중국의 경제성장 대안 모색, 내수와 증시 부양이 답일까?

 2024년 3월 11일, 2024년 양회가 끝이났습니다. 정협(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과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 이렇게 2개의 회의를 같은 시기에 개최해서 양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정협은 중국공산당을 비롯해서 소수민족, 재외동포 등 34개 영역을 대표하는 2천여 명의 위원 간의 회의입니다. 전인대는 각 성과 자치구, 직할시 등에서 선출된 3천여 명의 인민대표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전국 31개 성은 지방정부 레벨의 양회를 미리 개최해서, 당해연도 사업계획을 미리 발표하고 베이징으로 집결하게 됩니다. 양회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31개 성들이 발표하는 사업보고서를 합쳐보면 대략적인 중국 전체의 사업계획을 사전에 예상할 수 있습니다. 2024년 양회에서 31개 성의 사업계획을 가중평균하니 경제성장률 목표가 5.3%로 나왔습니다. 

2023년에는 가중평균 목표가 5.6%가 나왔는데, 2024년 5.3%는 살짝 낮은 수준입니다. 이렇게 양회가 열리기 전에, 중국이 5% 정도를 경제성장률 목표로 제시하겠구나 하고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예상대로 2024년 양회에서 중국공산당은 경제성장률 목표로 5% 안팎을 제시하였습니다. 5% 안팎은 5%를 목표로 가되, 5%에 살짝 못 미칠 경우에도 대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별 GDP 목표를 보면, 목표가 높은 곳에는 상당한 투자가 이뤄질 것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2024년에는 티베트와 하이난이 8%의 성장률로 목표를 높게 잡고 있습니다. 2022년 목표를 보면 티베트 1.1%, 하이난 0.2%였던 곳이라 8% 목표는 해당 지역에서 무엇인가 큰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2023년 사업계획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 해결이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 중에 헝다, 완다 등 부동산 기업들이 속속 무너지면서, 2023년에 가장 중점을 뒀던 지방정부의 부채문제 해결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에 문제가 생기면서 지방정부 부채문제도 해결이 안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 지방정부의 재정수입 1/3 이상이 토지 사용권 매각 대금인데, 중국의 모든 부동산은 국유로 되어 있고 아파트는 정부 소유 토지 위에 건물의 사용권만을 구입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아파트 신규 분양이 줄어들어 토지 사용권 매각 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지방정부 재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국의 높은 성장은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악화로 재정수입이 부족한 지방정부는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렇게 보면 5% 내외라는 GDP 성장률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해가 2024년인 것 같습니다.  

2024년 양회에서 중국은 부동산 대신 "전(電)광(光)리(리튬Li)"를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서 전광리는 전기차, 태양광 제품, 리튬 배터리를 뜻합니다. 전기차 수출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관세가 변수입니다.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 부과를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터리와 태양광 분야에는 IRA와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이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태양광의 벨류체인은 폴리실리콘 → 잉곳·웨이퍼 → 셀(태양전지) → 모듈로 이어집니다. 규소(Si)를 정제해서 폴리실리콘을 만들고, 폴리실리콘을 재료로 원기둥 모양의 결정(잉곳)을 만듭니다. 잉곳을 얇게 절단하면 웨이퍼가 되고, 웨이퍼를 가지고 태양광을 전기로 전환하는 셀(태양전지)을 만들게 됩니다. 셀을 여러 장 모아서 판 형태로 만든 게 태양광 모듈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 폴리실리콘의 88%, 웨이퍼의 97%, 셀의 86%, 모듈의 79%를 만드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태양광 산업 경쟁력은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의 원가경쟁력에서 나옵니다. 폴리실리콘을 싸게 공급받다 보니, 웨이퍼, 셀, 모듈이 순차적으로 저렴해져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것입니다. 

폴리실리콘 제조원가 중 전기료가 35%를 차지하고, 인건비도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중국 태양광 업체들은 전기가 싼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위구르인을 저임금으로 고용해 제조원가를 낮추고 있습니다. 중국이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생산하는 태양광 제품 비중이 50%를 넘어가고 있어, 중국산 태양광은 신장위구르가 핵심입니다.

이에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이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UFLPA법은 중국 신장지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인데, 이에 따라 중국 태양광기업들은 공장을 동남아로 옮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수입 태양광 모듈의 78%가 동남아 4개국산이며, 이 기업들의 45%는 중국인 소유입니다.

미국은 동남아로 우회수출되는 중국산 제품을 모르지 않지만, 비중국산을 사용하면 태양광 발전단가가 너무 오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동남아 수입 폴리실리콘 가격은 kg당 7~8달러인데 비해 미국산은 22.7달러로 3배 이상 비쌉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2024년 신규 발전량의 58%가 태양광인데, 비중국산 사용시 발전원가가 대폭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태양광 패널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미국 기업의 태양광 패널 생산가격은 와트당 40센트, 유럽 기업이 30센트 내외인데 비해 중국은 15센트 정도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EU가 친환경을 빠르게 확대하려면 저가의 중국산이 필요하지만, 자국 태양광 산업이 위축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에 EU는 강제노동 제품의 역내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을 도입하기로 하였고, 미국 역시 UFLPA로 신장과 동남아 유입 저가 태양광 제품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IRA를 통해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진행 중입니다. IRA는 미국 내 태양광 발전시설 건설 시 최대 40%의 세금 혜택을 주는 제도입니다.

IRA 발효 후 미국 내 태양광 제조 프로젝트가 52개 이상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의 한화솔루션, OCI 자회사 등도 미국 내 태양광 생산시설 구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 역시 미국 내 공장 건설을 하고 있어, 미국 시장에서 한중 기업 간 경쟁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산 40%와 중국산 60%를 섞어 세제 혜택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이 전광리를 밀기 시작했지만, 미국의 강한 견제가 들어오고 있어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한 Plan B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중국 정부는 내수 확대와 증시 부양을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한 Plan B로 밀기 시작했습니다. 내수 확대는 '이구환신(以舊換新)'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구환신은 중고 자동차나 가전제품, 가구 등을 새것으로 교체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입니다. 

2024년 4월, 상무부 등 14개 부서가 공동으로 '소비품 확대를 위한 이구환신 행동방안' 등 다양한 내구소비재 부양책을 발표했습니다. 상하이, 절강성, 광둥성 등 지방정부들도 자동차, 가전, 가구, 인테리어 등 내구소비재 소비 확대를 위한 이구환신 행동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구환신은 2009년에 처음 등장한 정책이지만, 이번에는 기본 보조금 외에 에너지 절약 등 친환경 제품 구매 시 추가 혜택을 주는 점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상하이 주민이 144만원 상당의 에너지절감형 에어컨을 구매하면 10% 할인과 에너지 절약 보조금, 제조사 할인 등이 추가로 적용되어 50만원 이하에서 구매가 가능해집니다.  

판매가에서 30~40%까지 할인이 적용되다 보니, 시행 한 달 만에 8% 이상 매출 증가 효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동차 역시 대당 190만원 정도의 이구환신 보조금이 붙으며 판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내수는 이구환신 정책으로 늘리고, 증시는 '신국9조'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4년 4월 12일 국무원이 발표한 신국9조(자본시장 업그레이드를 위한 관리감독 강화 가이드라인)는 중국판 밸류업 프로그램입니다. 신국9조는 IPO, 상장, 상장폐지, 증권 및 운용사 관련 감독관리, 중장기 자금의 주식시장 유입 등 9개 가이드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본과 달리 중국은 행정부인 국무원 주도로 강제성과 처벌규정을 넣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국9조에 따르면 최근 3년 누적 현금배당 총액이 평균 순이익의 30%가 안 되면 특별관리대상 종목으로 지정되며, 가격변동폭 제한, 회계감사 강화, 대주주 주식매도 금지 등의 조치가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도 배당실적에 포함시켜 기업에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중 선택권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최하위 수준인 중국의 배당성향과 자사주 매입률을 높이려는 정책입니다.



배당 확대 정책은 실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2024년 5월까지 2023년도 배당을 발표한 중국 상장사 3859개사의 현금배당 총액은 2조 2400억 위안(약 423조원)으로 전년보다 증가했고, 배당성향도 31%에서 42%까지 올랐습니다. 

중국 정부가 2조 위안(378조 5800억원)의 증시안정화기금을 투입해 주식을 매수하고, 국영기업과 금융기관에 주식비중 확대를 지도하는 등 증시 부양을 위한 전방위 정책이 연초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국유기업 평가지표에 시가총액을 추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으로 중국 증시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남은 문제는 기업이 배당을 할 만큼의 실적을 내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다양한 부양책들이 증시 상승을 이끌고 있지만, 실적 개선 없이 정책과 수급만으로 증시가 계속 오를지는 의문입니다.

한줄 요약하면, 중국 정부가 영락없이 내수 확대와 주가 부양을 하고 있지만, 기업실적 개선 없이 정책과 수급만으로 증시 상승이 지속될지는 의문인 상황입니다. 상반기 기업실적 발표 시점을 Exit 타이밍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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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3일 월요일

캘리포니아 최저임금 인상, 패스트푸드 산업 지각변동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패스트푸드 회사 직원들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20달러로 대폭 인상했습니다. 2023년 기존 시간당 16달러에서 4달러나 올린 조치입니다. 미국은 본래 팁 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팁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연방 공정노동법에 따라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만 보장되고 있죠. 예를 들어 음식점 서빙 직원은 고용주가 시간당 2.13달러만 주면 되는데, 실제로는 팁 덕분에 평균 34.57달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 직원들의 경우는 상황이 다릅니다. 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죠.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는 시간당 임금 1달러 인상 시 메뉴 가격이 2% 오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에 4달러나 인상되었으니 메뉴 가격은 8%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4월 1일 최저임금 인상 조치 이후 여파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캘리포니아 피자헛과 남부캘리포니아 피자 등 주요 프랜차이즈들이 자체 배달 서비스를 중단하고 배달 직원 2,000여 명을 해고했습니다. 대신 우버이츠 등 배달대행 업체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이에 따라 소비자 부담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메뉴 가격 인상 역시 불가피해졌습니다. 맥도날드, 칙필레, 스타벅스 등 대형 체인점들이 4월 15일까지 메뉴 가격을 4~10% 수준으로 인상했습니다. 소형 식당들도 6~7% 가격을 올렸다고 합니다. 체인점 종업원들의 임금 인상으로 인력 이동이 발생하면서, 소규모 식당들도 체인점 수준으로 임금을 맞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변화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10대들의 첫 노동 경험 장소였던 패스트푸드점에 대한 기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20달러에 달하는 시급 수준에서는 숙련도가 낮은 10대 취업자 채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체인점들도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키오스크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주도했습니다. 그는 병원 등 의료시설 노동자 최저임금도 시간당 25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기도 합니다. 다만 의료 분야 임금 인상에는 주정부 예산 수십억 달러가 들어가야 하므로,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뉴섬 주지사는 2024년 차기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대안 후보로 거론되며 전국을 다니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그의 주요 메시지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는 노동력 활용 방식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뉴욕 레스토랑들이 줌을 활용해 필리핀, 인도 등지의 원격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 최저임금 16달러를 피해 한 달에 1,000원도 안 되는 저임금으로 계산원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노동법상 물리적으로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웃기게도 이런 관행이 합법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글로벌화로 노동 활용 방식은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캘리포니아 최저임금 인상 조치가 가져온 여러 영향을 살펴보았습니다. 비용 전가와 구조조정, 고용 방식 변화 등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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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0일 금요일

한국형 전투기 KF-21 프로젝트, 인도네시아와의 진통

 KF21과 관련하여 인도네시아가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는 1966년부터 32년간 군부 출신 수하르토의 장기 독재 체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수하르토 정권은 정당들을 통폐합하여 1개 여당과 2개 야당 구도를 만들었는데, 2개 야당 또한 정부가 만든 정당이었기에 제대로 된 야당은 존재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하면서 인도네시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마이너스 13%의 역성장을 기록했고, 환율이 5배가량 폭등하는 등 경제가 휘청였죠. 이에 따라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학생 4명이 군에 의해 살해되자, 수도 자카르타가 분노한 군중들로 인해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수하르토 대통령이 사임하게 되었고, 1개 여당과 2개 야당 체제 또한 무너지면서 인도네시아는 자잘한 다당제 국가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민간인 출신의 조코 위도도는 2014년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당선되어 2024년까지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의 정당 구조가 군소 정당 위주의 다당제이다 보니, 여당은 의석수가 가장 많은 1당이기는 하지만 20%의 의석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여당은 여러 정당과 연합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야당 쪽에도 많은 장관 자리를 내주게 되었죠.

그래서 야당 대표인 프라보워가 국방부 장관이 된 것입니다.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 재벌 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인도네시아 은행을 설립했고,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수하르토의 사위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하르토 정권 때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어두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1998년 수하르토가 물러나자 요르단으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요르단에서 재벌 인맥을 동원해 기업가로 변신한 프라보워는 정국이 잔잔해지자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27개 기업을 운영하며 정계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하지만 독재자 수하르토의 오른팔이라는 이미지 탓에 지지도를 높이기 어려웠죠. 이에 2012년 조코 위도도의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비용을 댔고, 위도도 역시 인기를 얻어 2014년 대선까지 나가게 됩니다. 

프라보워는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에게 아슬아슬하게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승리한 위도도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야당 대표 프라보워를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프라보워는 국방부 장관직을 차기 대선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코 위도도 정부가 체결한 KF-21 공동개발 사업을 중단시키고, 군사력 강화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자 했습니다. 리베이트가 만연한 인도네시아에서 리베이트를 받기 어려운 KF-21 사업은 정치권에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원했던 것은 전투기 개발 기술과 48대의 KF-21 도입, 그리고 리베이트였습니다. 하지만 리베이트를 요구하지 않는 조코 위도도 성향상 정상적인 공급계약이 체결되었죠. 1조 7천억 원에 제작기술과 시제기 1대를 가져가고, 48대는 인도네시아에서 자체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프라보워 장관 취임 후 48대 자체 생산 대신 전투기를 직접 사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한국에 분할 납부하기로 한 개발 분담금 지급도 중단시켰죠. 이는 분양 계약 후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을 미루는 꼴이었습니다. 

프라보워 입장에서 48대 KF-21 자체 생산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제조기술만 빼먹고 러시아 SU-35와 프랑스 라팔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전에서 SU-35 성능이 기대에 미치자 미국의 F-15 36대를 139억 달러에 구매 신청했고 승인받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기존 노후기 50기 대체 및 50기 추가 확보해 총 100기 전투기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프랑스 라팔 42기, 카타르 중고 미라지 12기를 계약해 F-15 36기만 더하면 90기가 확보되는 셈이었죠. 이렇게 중도금 납부 거부와 배째라를 펼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F-15 전투기 구매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도네시아 측은 보잉사에 구매대금을 분할 지급하자고 제안했지만, 보잉사는 인도네시아가 한국에 KF-21 대금을 연체 중인 것을 감안해 분할 지급을 거부하고 선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수도 이전 등 돈이 많이 들어갈 일이 많아 보잉에 선지급이 어려워지자 KF-21 사업이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이죠.

인도네시아는 갑자기 시제기로 제작된 자국 분담분 KF-21 1기를 받겠다며 기술자를 한국에 파견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연체된 중도금 전액 지급이 선행되어야 시제기 인도가 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현재 파견된 32명의 기술자들은 OJT 수준 교육만 받고 있어 핵심기술 접근이 차단된 상황입니다.  

한국 국방부 입장에서는 기술이나 시제기를 인도하지 않은 이상 우리 돈으로 KF-21을 완성한 뒤 다른 곳에 팔아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UAE, 폴란드 등 KF-21을 원하는 곳도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인도네시아에 KF-21을 판매할 경우 실전 데이터 축적을 통해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반군 활동으로 실전 투입 가능성이 높고, 수도 이전 사업에 한국 건설사 대규모 수주 기회가 있으며, 세계 1위 니켈 부국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짜증나기는 하지만 달래가며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수출길 없던 T-50 초음속 훈련기 16대를 처음 사준 단골 손님이기도 합니다. 이를 계기로 필리핀, 태국 등으로 추가 수출되었고, 잠수함 3척도 인도네시아가 구매했습니다. 국방력을 빠르게 기르는 잠재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지만, 1만 7천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상 육군보다는 공군과 해군 전력이 더 필요한 실정입니다. 과거에는 국제 분쟁이 많지 않아 소규모 해군만을 보유했지만,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따라 최근 공군과 해군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예산이 11조 원 정도에 불과해 매년 2조 원가량만을 무기 구입비로 지출하고 있어 예산이 빡빡한 게 문제입니다. 프랑스 라팔 전투기 구입 대금 10조 원도 예산이 아닌 국가 채권 발행으로 충당했을 정도로 여유가 없는 나라입니다.

한편 한국 공군은 2032년까지 노후 F-4/5 전투기를 KF-21 120대로 대체할 계획입니다. 전투기는 대량 생산할수록 단가가 크게 떨어지는 특성이 있어 구매 예산을 절약하려면 수출을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이 필요합니다. 

KF-21은 스텔스가 아닌 일반 전투기의 보급형 모델로,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적당한 성능의 일반 전투기와 스텔스기를 적절히 혼합 운용하는 것이 가성비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F-35 생산을 위해 F-16 라인을 축소한 상황을 감안하면 KF-21 역시 틈새시장을 노려볼 만한 상황인 셈입니다.



KF-21 전투기 개발이 일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KF-21을 보급형 전투기로 발표했지만, 군사전문가들은 내부 무장창을 고려한 설계로 보아 스텔스 전투기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KF-21의 외형은 스텔스기인 F-22와 F-35를 겸비한 모습으로, 두 기체의 장점을 잘 반영했습니다. 

이에 따라 외형만으로도 레이더에 잡히는 면적인 RCS 값이 0.5제곱미터 수준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비록 완전한 스텔스 수준은 아니지만 중국 J-20과 비슷한 수치입니다. 스텔스 도장과 무장 은폐 등 업그레이드를 거치면 F-35 수준의 스텔스 성능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2026년 개발 완료 후 2027년부터는 '완전 스텔스화+무인기 편대화' 등 6세대 전투기로의 개량 사업도 검토 중입니다. 현재 음속 돌파에 성공했고 2024년 5월에는 EU가 공동 개발한 미사일 미티어의 실사격 훈련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애초에는 미제 미사일 장착을 계획했지만 수출 허가가 나오지 않자 미티어와 IRIS-T를 탑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이 뒤늦게 수출을 허가해 KF-21은 미제 미사일과 유럽제 미사일을 모두 탑재할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국산 공대공미사일까지 개발되면 수요국 니즈에 맞는 폭넓은 옵션 제공이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인도네시아는 2월 14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고, 야당 대표 프라보워가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여당의 조코위 현 대통령 지지율이 80%가 넘는 가운데 프라보워가 대통령에 오른 것은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을 러닝메이트로 맞아들인 덕분이었습니다. 

여당에서는 이를 두고 야당과의 야합이라고 공격했지만, 현직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연합한 탓에 압도적 지지율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조코위 대통령이 장남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무리수를 둔 점에 대해서는 여론의 비판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상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가 되려면 만 40세가 넘어야 하는데 기브란은 30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지방자치단체장 경력자는 연령제한 없다'는 해석으로 기브란이 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해석을 내린 헌재소장이 조코위 대통령 와이프의 친동생이라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관전 포인트는 프라보워 신임 대통령과 조코위 전 대통령 간의 권력 다툼입니다. 조코위가 장남을 부통령으로 앉혔지만 권력욕이 강한 프라보워가 권력을 쉽게 공유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과거 실적을 부정적으로 재평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KF-21 사업에 대해 분담금 지급을 거부하고 독자 행동을 벌였던 터라 향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비 1조 8천억 원 중 2,800억 원 정도만 지급한 상태입니다. 중도금 일정상 1조 800억 원을 받아야 하지만, 개발 기술 100% 이전 외에도 한국 정부 허가 없이 자체 생산분을 수출할 수 있는 권리까지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현재 KF-21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폴란드와 UAE입니다. 폴란드는 이미 한국 방산 무기를 다량 구매했고, 최근에는 FA-50 훈련기 인수에 앞서 한국 국방부가 KF-21 시뮬레이터까지 공개하고 조종 경험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인도네시아 국기가 그려진 KF-21 기체 사진에서 인도네시아 국기를 가린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가 분담금 1조 8천억 원 중 6천억 원만 납부하고 기술이전도 3분의 1만 받겠다는 제안이 나왔고, 5월 8일 1천억 원을 추가 납부했다는 보도도 있어 합의가 임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네시아가 몇 년 전부터 3분의 1 납부 및 기술이전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실무 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한화오션에서 계약한 잠수함 3척 대금도 몇 년째 지급하지 않아 신용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결국 신용도에 문제가 있는 나라에서 더 문제 있는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KF-21 사업은 적절히 손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대신 현재 관심을 보이는 폴란드, 이집트, 사우디, UAE 등에서 물량을 확보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처음 계약을 잘 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KF-21 제작 자체는 잘 진행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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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9일 목요일

글로벌 김 인기에 국민반찬 김이 '금'값




안녕하세요. 오늘은 김의 가격 인상으로 인해 김 관련 근황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2004년, 태국에서 '타오케노이'라는 김 스낵 과자가 처음 출시되었습니다. 이 제품은 중국산 김을 수입하여 튀기거나 구운 뒤, 바비큐, 두리안, 똠양쿵 등 다양한 맛을 첨가한 과자입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흰밥에 김을 싸서 드시지만, 태국에서는 김을 과자로 출시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이 김 과자는 열량이 낮아 살이 찌지 않으면서도 단백질과 섬유소가 풍부해 '건강한 과자'로 인식되었고, 이로 인해 태국 젊은 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타오케노이 이후 10여 개 이상의 태국 기업에서 김 과자를 내놓았지만, 태국 김 과자 시장에서 타오케노이의 비중이 약 70%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 과자가 건강하면서도 맛있다는 점에서 태국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장 1위 기업인 타오케노이를 제치기 위해 다른 태국 김 과자 제조기업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에 대한 니즈로 고급 과자인 김을 사 먹는 것에 착안하여, 김에 대한 차별화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김은 한국, 중국, 일본 정도에서만 양식으로 대량 재배되고 있습니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김 양식이 불가능한데, 이는 김이 바닷물 온도 20도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여름에는 재배가 불가능하여 겨울에만 김을 키워 1년 동안 섭취합니다.

타오케노이가 중국산 김을 수입해 과자를 만드는 것을 약점으로 본 경쟁사들은 중국 바다 오염 문제를 집중 홍보하며, 자사는 한국산 김을 수입해 제품을 만든다고 광고했습니다. 중국산 김과 달리 한국산 김은 얇고 식감이 좋다는 차이점도 있었죠.

이에 위기를 느낀 타오케노이 역시 김 수입선을 한국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일본도 김 수출국이지만 자국 수요를 충족하기에도 모자라 결국 한국과 중국이 태국 김 과자 시장을 두고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태국에서 수입하는 김 과자용 김의 80% 이상이 한국산입니다.



태국 김 과자 시장은 타오케노이의 1인 독점이 유지되고 있지만, 맥주회사 싱하에서 만든 'masita'가 강력한 경쟁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싱하의 김 과자 브랜드 'masita'는 맛있다는 한국말을 사용한 과자 이름입니다. 포장지에도 한국어 '맛있다'를 강조하며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마시타는 한국산 김과 한국 광고모델을 활용해 K-POP과 한국 문화에 우호적인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시타의 광고모델은 한국 보이그룹 NCT입니다.

한편 태국의 타오케노이는 태국 김 과자 시장에서 70% 이상 점유율을 차지했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세계 30개국에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성공적으로 시장을 개척한 곳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태국 타오케노이의 성공에 주목하며 동남아 김 과자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미원과 청정원 등을 가진 대상이 인도네시아에 현지 법인을 세워 '마마수카(mama suka, 엄마가 좋아해)'라는 김 과자를 출시했습니다. 대상은 한국에서 조미김을 들여오는 대신, 일반 김을 구입해 현지인 입맛에 맞는 김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조미김 역시 한국과 다르게 잘게 부수어 요리에 뿌려 먹는 '뿌려먹는 김', 매운맛 김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대상의 성공적인 시장진입으로 인도네시아 김 시장은 타오케노이와 대상의 경쟁구도가 되었습니다.

2024년 3월 기준 인도네시아 김 시장에서 대상 마마수카가 60.7%, 타오케노이가 33.1%를 차지하는 양강 구도입니다. 대상은 2023년 한 해 동안 인도네시아에서만 조미김 5천만 봉지를 판매했습니다.

타오케노이 역시 대상과 경쟁하기 위해 김 과자 외에 다양한 조미김 출시를 준비 중입니다. 두 회사 모두 한국산 김을 사용하고 있어, 한국산 김의 인도네시아 수출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타오케노이가 진출한 동남아 국가들의 김 수출도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대비 2023년 한국의 김 수출 증가율을 보면, 베트남 62.9%, 태국 49.5%, 인도네시아 44.8%, 필리핀 41.8% 등 동남아시아로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김 수출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일본도 수출쿼터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도 냉동 김밥 등이 인기를 끌면서 전년 대비 김 수출이 14.3%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2022년 대비 2023년 한국의 김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동남아시아 지역 김 가공식품 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요 수출국인 일본과 미국의 수요도 꾸준히 늘어난 영향도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산 김이 인기를 끌며 세계 김 시장에서 한국산 점유율이 70%를 넘어섰습니다. 동남아 주식은 쌀이지만, 그곳에서는 김을 밥에 싸먹거나 밥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들 과자로 김이 도입되었고, 현재는 2030 여성들 사이에서 칼로리가 낮고 건강에 좋은 고급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산 김의 이런 인기에 힘입어 2019년부터 김은 참치를 제치고 수산물 수출 1위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 수출이 빠르게 늘어나며 2023년에는 연간 수출액 1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다르게 보면 2023년 한 해 동안 상당량의 김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국 김 수출 호조로 인해 국내 김 재고가 크게 줄어들며 김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한국에서 김은 수온이 낮은 10월부터 4월까지만 양식이 가능합니다. 생산이 끝나는 4월에 재고가 최대치를 기록하고, 햇김이 나오는 10월 직전에 최저치를 보이는 패턴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2023년부터 김 수출이 너무 잘되면서 2024년 4월 말 재고가 과거의 반 토막 수준인 4천만 속(1속=100장) 정도밖에 쌓이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7천만 속 이상 재고를 가져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에 따라 2024년 4월 기준 마른 김 1속 도매가격이 만 원을 넘어서며, 2023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인상되었습니다. 한국 주요 조미김 업체들도 가격을 20% 가량 인상했습니다. 

수입만이 유일한 대안이지만 중국산 김은 식감과 품질면에서 인기를 끌기 힘든 상황입니다. 수요 증가와 공급 제한으로 인해 김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가을까지 '김파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김밥천국의 김밥 가격도 오르고, 이제 앞으로는 라면에 곁들이는 김밥 대신 공깃밥을 주문해야 할 지경입니다. 비싸고 귀해지면 더 먹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 심리이며, 이처럼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영향을 주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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