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중국 진출에 따른 이탈리아의 반중 감정 고조와 IMEC 프로젝트 참여

  철광석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진행이 주춤해졌다는 글을 쓴 바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일대 일로에 대항하는 다른 대안이 진행되고 있어 추가 설명이 필요합니다.


철광석 가격 하락의 비밀 (중국發 불황이 철광석 시장에 미치는 연쇄 반응)


EU 국가 중 중국에 가장 친화적인 국가로 이탈리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중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G7에서 처음으로 일대 일로에 참여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World Bank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주도로 설립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도 가입했습니다. 




중국은 2020년 이탈리아에 코로나가 휩쓸자 의료기기를 공급하고, 의료진을 지원하면서 우호관계를 강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중국산 마스크도 저가에 대량으로 이탈리아에 공급했는데, 중국산 불량 마스크 파동이 터졌습니다. 중국이 유상으로 제공한 마스크의 절반에 가까운 2억 5천만 장이 불량으로 밝혀졌고, 이탈리아 의료진 상당수가 중국산 불량 마스크 때문에 진료과정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중국산 마스크에 인증등급이 찍혀있었지만, 필터 능력이 1/10도 되지 않았고, 일부는 인증 자체가 위조되었다는 검찰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친중 노선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도전하는 인도의 다양한 대안들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량 마스크 사건 외에도 이탈리아 프라토와 밀라노에 대규모로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이탈리아인들의 반감을 키웠습니다. 이들이 해당 지역에 공장을 세워, 이탈리아인들이 아닌 중국인들을 고용하며 일자리를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프라토(PRATO)는 오래된 중세도시로, 인구 19만 명의 자그마한 소도시입니다. 그런데 19만 명의 주민 중 중국인이 5만 명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프라토의 공단지역에는 6천여 개의 중국인 소유 의류공장들이 몰려있고, 중국에서 원단을 수입해서 'Made in Italy'라는 이탈리아 명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의 경쟁력은 저렴한 납품 가격입니다. 프라토의 중국 공장들은 이탈리아인을 고용하는 일반적인 공장의 1/5 가격에 의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인들의 진출이 이탈리아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면서 지역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프라토의 중국인들은 1980년 중반 중국 저장성에서 200명 정도가 넘어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가족과 친지를 계속 데려다 정착하면서, 프라토에만 5만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거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대규모 유입은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프라토의 의류업만이 아니라, 마테라 지역의 이탈리아산 소파 공장과 밀라노의 피혁 공장들도 중국인들의 진출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 4월 5일,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은 유명 패션 브랜드 조르조 아르마니 SPA를 사법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조르조 아르마니 SPA는 1800유로(263만 원)에 판매하는 명품 핸드백을 93유로(13만 원)에 중국 하청업체로부터 공급받았습니다. 이 중국 하청업체에는 불법체류 중인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휴일 없이 하루 14시간씩 시급 2유로(2900원) 정도를 받고 일해왔습니다. 


이처럼 이탈리아 브랜드의 명품들이 숙련된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손에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의 손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탈리아산 명품들과 'Made in Italy' 브랜드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중국인들은 이곳에서 번 돈으로 중국 식당과 숙박시설 등을 사들이고, AC밀란 축구 구단까지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대한 우려와 반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은 역사가 깊은 이탈리아 대기업들을 계속해서 인수하고 있습니다. 중국 화공그룹은 70억 유로를 들여 이탈리아의 명품 타이어 제조사 피렐리의 지분 60%를 사들였습니다. 이는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이탈리아 기업들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이 이탈리아 기업들을 인수하고 일자리를 가져가면서,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반중 정책을 내세운 조르자 멜로니가 2022년 9월 총리에 선출되었고, 그녀는 공약대로 2023년 12월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에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중국은 강력히 반대했지만, 멜로니 총리는 인도가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IMEC)'에 참여를 선언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이탈리아의 강경한 대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서 탈퇴하면서 중국과 이탈리아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에서 탈퇴하고 새롭게 선택한 대안은 IMEC(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입니다. IMEC은 21세기 '스파이스 로드(Spice Road, 향신료길)'로 불리고 있습니다. 기원전부터 인도와 동남아에서 재배된 후추 등 향신료가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전파된 고대 무역 루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IMEC의 구상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서 나왔지만, 실제 주도권은 인도가 쥐고 있습니다. IMEC은 인도 뭄바이 등 3개 항구에서 UAE의 두바이항까지 선박으로 상품과 에너지를 운송한 후, UAE에서 철도로 사우디,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 하이파항까지 이어지고, 다시 유럽으로 수송하는 구조입니다.


인도는 이를 위해 뭄바이, 문드라, 칸들라 항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UAE와 이스라엘 등 IMEC 참여국들도 적극 협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 초 인도 아다니 그룹이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의 운영권을 확보하면서 IMEC 프로젝트의 주요 퍼즐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처럼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에서 탈퇴하고 미국과 인도가 주도하는 IMEC에 참여하면서, 중국과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IMEC의 장애요인은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의 연결 노선이지만, 역내 국가들의 적극적인 협력 하에 이를 해결해나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에서 탈퇴하고 미국과 인도가 주도하는 IMEC(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에 참여하면서, IMEC 프로젝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국 관계가 좋지 않은 가운데, 미국이 뒤로 물러서고 양국 모두와 관계가 좋은 인도가 앞장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IMEC의 핵심은 기존 철도 노선을 최대한 활용하며, 선박에서 철도로의 효율적인 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철로 건설을 최소화하면서도 신속한 프로젝트 진행이 가능합니다. 




이는 철강 등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신규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국의 일대일로와는 대조적입니다. IMEC의 실현으로 수에즈 운하, NSTC(러시아-이란), 일대일로 등 기존 운송로의 경쟁력이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IMEC은 러시아-이란-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인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2023년 9월 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IMEC 설립을 주도했으며, 주요국 정상들이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주목할 점은 인도 최대 기업 아다니 그룹이 IMEC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인도가 중국에 이은 새로운 '대세'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IMEC을 통해 인도가 역내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문제점은 정치와 경제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1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라도 단 한 명의 직원을 해고하려면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등 정부의 규제가 매우 강합니다. 또한 상품 하나를 판매하려 해도 80개 이상의 관공서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복잡한 인허가 과정이 존재합니다. 이를 악용해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기업들로부터 뒷돈을 받는 부패 구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다니 그룹은 인도의 대표적인 기업 집단 중 하나로, 정치와 유착관계가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에는 세계 3대 상인 집단으로 유대 상인, 중국 화상, 인도 상인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인도 상인 집단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인도 상인 집단 중에서도 파르시(조로아스터교) 계열이 두드러집니다. 대표적인 파르시 기업으로는 타타, 고드레지, 세계 1위 백신 기업 SII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리안계 혈통에 유럽적 풍모를 가지고 있으며, 정직한 상행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와 경제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상인 계급의 높은 사회적 지위는 인도 경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다니 그룹의 IMEC 참여 등을 통해 이러한 인도 경제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도의 주요 상인 집단 중에서도 자이나교를 믿는 자인 상인들은 특히 주목할 만한 집단입니다. 인도 전체 인구의 0.3%인 450만 명에 불과한 자이나교 신자들이 전체 세금의 24%를 납부할 정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왔습니다. 


자이나교는 생명체에 대한 극단적인 금기 사항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기, 벌레 등 해충은 물론이고 식물의 뿌리까지도 살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농업이나 축산업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상업과 금융업에 특화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자이나교 출신 기업가가 아다니 그룹의 회장 아다니입니다. 아다니는 1,200억 달러의 개인 재산을 보유할 정도로 부자입니다. 자이나교 상인들은 JITO(Jain 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라는 조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정치인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이나교의 강력한 생명 존중 사상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의 금융 윤리 의식은 그리 강하지 않은 편입니다. 인도의 주가 조작 사건이나 불법 외화 유출 사건에 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에 민감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자이나교 상인 집단의 영향력과 문제점은 인도 경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 상인 집단인 자인은 인도 사회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편입니다. 이들을 "유대인도 백기를 들 노랭이, 돈을 쌓아두는 괴물"과 같은 표현으로 부르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다니 그룹의 회장 아다니는 자이나교 출신이며, 모디 총리와 같은 고향 출신이어서 유착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아다니 그룹은 빠른 성장으로 인해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높은 상황입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아다니 그룹의 이익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2023년 1월 공매도 회사인 힌덴버그가 아다니 그룹의 회계 부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주가가 반토막 났지만, 결국 인도 대법원의 선고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3월 미국 법무부가 아다니 그룹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법적 공방이 예상됩니다.


이처럼 인도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등의 내부 문제가 많은 국가입니다. 이탈리아 역시 깨끗하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두 나라가 주도하는 IMEC 프로젝트가 제대로 추진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IMEC은 새로운 철로 건설보다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한 선박-철도 환적 네트워크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비용 측면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또한 IMEC을 통해 중국, 러시아, 이란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을 얻고 있습니다.




결국 인도는 정치, 경제, 종교 등 다양한 층위에서 복잡한 역학관계가 작동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IMEC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도 이러한 인도의 특성이 반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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