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수요일

아프가니스탄과 ISIS-K의 역사적 흐름 정리

ISIS-K는 ISIS의 아프간 지부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ISIS-K의 역사적 흐름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군부는 소련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돌아온 후, 1978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에 공산정권을 수립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이슬람 수니파가 주류였기에, 종교를 해악으로 보는 공산주의 군부 집권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죠. 이에 이슬람 수니파 부족을 중심으로 소련 공산정권에 저항하는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니파 부족을 중심으로 결성된 반군 게릴라들을 무자헤딘이라고 불렀습니다. 



1979년 3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17사단이 반군으로 노선을 갈아탔습니다. 17사단은 부대 내 소련 군사고문단, 간호사, 군인가족 등 500여 명을 학살했고, 이들 시체를 막대기에 꽂아 거리에 전시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같은 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3일 만에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을 습격해 대통령 호위 200여 명과 아민 대통령 및 가족들을 모두 사살하는 등 소련군의 잔혹한 진압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소련 군사고문단 등에 대한 학살 사고는 정부군이 아닌 반군에 합세한 군인들이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소련은 이를 구실 삼아 정부군을 쳐부수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자 정부군과 싸우던 무자헤딘의 타깃이 소련군으로 바뀌었고, 무자헤딘이 산악지형을 이용해 게릴라전으로 소련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소련군이 단순히 학살당한 소련군과 가족들을 복수하려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프간을 먹으면 소련이 패권국 유지를 위한 필수 아이템인 겨울에도 얼지 않아 배가 다닐 수 있는 부동항이 가까워지는 것이었죠. 소련이 노리던 부동항이 바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이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이 꿀꺽 삼켜버린 과다르항입니다. 과다르항은 자연 수심이 14.5m라 항공모함까지 들어올 수 있는 파키스탄에서 유일한 수심 깊은 항구였습니다. 



원래 과다르항은 오만의 소유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어촌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지질조사국이 파키스탄 해안 조사 중 과다르항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수심이 깊어 큰 배도 들어올 수 있고, 에너지 수송로의 길목에 위치한 핵심 요지였죠. 파키스탄이 오만에 11억 불을 주고 이 지역을 구입했는데, 실제 돈은 CIA가 댄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당시 소련에 대항해 서아시아에 파키스탄을 키워주고 있었고, 파키스탄과 미국 관계가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소련의 아프간 점령에 파키스탄은 긴장했지만, 수니파의 수장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각국들은 분노했습니다.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이슬람 수니파 국가를 침공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은 '악의 무리가 쳐들어왔다'며 성전을 선포했고, 피끓는 아랍 청년들이 무자헤딘에 합류했습니다. 소련 아프간 침공에 화난 미국 또한 파키스탄을 경유해 최첨단 무기를 무자헤딘에 지원했습니다. 결국 소련은 10년간 62만 명을 투입하고 1만 5천여 명의 전사자를 내며 아프간에서 퇴각했습니다. ☠️


소련이 물러나자 아랍 지역에서 모여든 무슬림들은 자국으로 돌아갔고, 아프간은 무자헤딘과 지방 군벌들의 이합집산으로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사우디에서도 많은 청년이 아프간전에 합류했다가 귀국했는데, 이들은 전투 경험과 전투력이 뛰어난 실업자 집단이었죠.


이때 사우디 재벌 3세이자 종교 원리주의자인 빈 라덴이 이들을 모아 자금을 지원하고 계속 훈련을 시켰습니다. 빈 라덴은 이 조직의 수뇌가 되어 '알카에다'라는 이름을 붙였죠.


파키스탄에도 알카에다처럼 키우던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탈레반입니다.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뜻으로, 성전을 위해 모인 아랍 청년들을 사우디의 돈과 미국의 무기로 파키스탄에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훈련시킨 집단이었습니다. 사우디의 돈, 미국의 무기, 죽음을 겁내지 않는 광신도가 결합되자 탈레반은 강력한 군사집단이 되었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은 주민들의 열광적 환영을 받았습니다. 광신도라 과격하긴 했지만 깨끗했고, 모든 일을 코란 율법대로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코란에서 죽을죄라면 죽이고, 돌로 때려 죽이라면 돌로 때렸죠. 탈레반은 이렇게 잔인하고 과격한 강압적 질서로 아프간을 통치했습니다. 😨


한편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쿠웨이트 다음은 사우디가 될 것이라 우려한 사우디 왕가는 미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라크전 이후에도 사우디 왕가는 같은 상황 재발 우려로 계속 미군 주둔을 요청했습니다. 


사우디는 사우디 왕가와 종교 원리주의 집단이 합친 나라였는데, 종교 원리주의 집단은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는 한 왕가가 해먹는 것에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가가 미군을 주둔시키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사우디 종교 원리주의자들 눈에 미국은 신성한 이슬람 국가를 침공한 이교도나 다름없었던 것이죠. 이에 종교 원리주의자들의 지원을 받던 빈 라덴의 알카에다는 타도 대상을 소련에서 미국으로 바꿨습니다. 


수단에 베이스캠프를 만든 알카에다는 반미 성전을 시작했고, 이들이 저지른 것이 바로 911테러였습니다. 미국은 테러범 추적에 나섰고, 빈 라덴 등 핵심 조직원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도피했습니다. 


미국은 아프간의 탈레반에 빈 라덴 인도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탈레반 수뇌의 딸과 빈 라덴의 아들이 결혼한 사돈 집안일 정도로 두 세력은 수니파 종교와 핏줄로 엮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아프간과 전쟁을 시작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빈 라덴을 사살했습니다.


빈 라덴 사살 후 미국 입장에서 아프간은 돈만 쓰는 하마 국가가 되었습니다. 중국과 국익을 건 큰 전쟁이 벌어지면서 아프간 미군 전력을 중국 쪽으로 재배치할 필요도 생겼죠. 결국 바이든 정부 시절 미국은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소련이 노렸던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중국이 먹었습니다. 중국은 30년 임차 후 과다르항에 LNG 인수기지를 만들고 과다르-중국 간 파이프라인도 구축 중입니다.  


그러나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에게도 내부 적이 있었으니, 바로 ISIS의 아프간 지부 ISIS-K입니다. 탈레반은 아프간만 점령하고 통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ISIS는 중동 전체 이슬람 국가를 추구했습니다.


ISIS-K는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탈레반과 서로 성전을 선포하며 내전을 시작했습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쥐고 있어 ISIS-K는 도전하는 입장이었죠. ISIS-K는 탈레반보다 과격하게 수니파 원수들을 타격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ISIS-K가 부족한 것은 돈이었습니다. 미국이 철수하고 지원을 끊자 아프간 재정이 극도로 부족해졌고, 탈레반뿐 아니라 ISIS-K에도 돈이 뿌려지지 않았습니다. 테러 활동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법이죠.


이에 ISIS는 러시아 바그너 용병그룹이 아프리카에서 물러나며 생긴 공백을 차지하면서 재정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본사가 열심히 활동하는 지부를 지원하는 개념으로 ISIS의 자금이 ISIS-K로 흘러가 이번 테러 자금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 의외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푸틴은 ISIS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로 시선을 옮기고 있지만 😉, 제왕은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법입니다.


이렇게 아프가니스탄과 ISIS-K의 역사적 흐름을 정리해보았습니다. 한 나라, 한 세력의 이야기가 전 세계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세상사는 서로 맞물려 있기에 우리도 주변 상황에 대해 열린 자세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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