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요일

포탄 전쟁,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국 방산업체의 기회

 최근 105mm 포탄에 대한 언급이 있어, 포탄 관련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적진 지역에 공수부대를 투하할 때에도 포가 필요했습니다. 비행기에서 투하되고 비포장 또는 산악지대에서 사용하려면, 포신이 짧고 가벼운 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은 공수부대 운용을 위해 105mm 포신과 75mm 경야포 부품을 조합하여 M3 곡사포를 개발했습니다. 낙하산 투하 등 공수부대 운용을 위해 개조된 M3는 간단한 구조에 가벼우면서도 포신이 짧게 제작되었습니다. 보병 운용을 위해 만들어진 M3는 필요시 분해하여 사람이 직접 운반할 수 있도록 가벼운 중량이 특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M3의 총 중량은 653kg에 불과했으며, 여섯 개로 분해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M3는 가벼운 중량과 짧은 포신으로 인해 발사 속도가 느리고 사거리가 기존 M101 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6.5km에 그쳤습니다. 짧은 사거리와 낮은 발사 속도로 인해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M3 평가는 좋지 않았고, 생산량 또한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재고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군에게 재고로 남겨진 M3 91문이 지원되었습니다. 미군에게는 M3가 사거리가 짧고 발사속도가 느린 하급포였지만,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포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포였습니다. 6.25전쟁이 터지고 한국군이 밀리는 과정에서 M3가 꽤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의정부에서 적의 전차를 저지했고, 동부전선에서는 춘천대첩의 주역이 되었으며, 강릉에서도 북한군의 남침을 이틀간 막아내는 등 활약을 펼쳤습니다.

한국은 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평지가 적고 산이 많다보니, 넓은 평원에서 먼거리 포격전을 하는 경우보다는 산을 둘러싸고 짧은 거리에서 포격전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M3가 6.5km의 짧은 사거리였지만, 이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나름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M3는 75mm 경야포를 기본으로 만들었지만, 포신은 105mm 포의 포신을 사용하다 보니, 포탄 역시 105mm 포탄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후 동일한 105mm 포탄을 쓰는 M2/M101 곡사포와 훨씬 강력한 155mm 곡사포가 미군과 함께 들어오면서 M3는 퇴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포탄의 크기는 나라별로, 대포에 따라 제각각이었기에 구경에 맞는 포탄 보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을 겪으며 연합국의 포탄 규격이 105mm와 155mm로 표준화되었고, 한국 역시 이 두 종류의 포탄을 주력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 이후에는 2개의 포탄 규격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여, 미국을 비롯한 EU 등 서방국들은 155mm를 주력 포탄으로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또한 155mm를 주력 포탄으로 운용하고 있지만, 6.25전쟁 때 사용하던 105mm 구형 포 2천문을 버리지 않고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거리가 짧고 위력이 155mm보다 떨어지지만,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역이라는 점에서 105mm 포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국방부가 구형 포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105mm 포탄 재고가 무려 340만 발이나 있는 것도 구형 105mm 포를 계속 보관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105mm 포탄 재고를 활용하기 위해 구형 105mm 포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155mm 포는 견인포와 자주포를 합쳐 약 4천문 정도가 있으며, 200만 발의 포탄을 기본 탄약으로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1974년부터 전쟁 가능성이 있는 우방국에 미리 포탄을 비축하는 WRSA(동맹군을 위한 전시 예비 비축물자) 정책을 실시해왔습니다. 미군은 한국 전시상황에 대비해 WRSA-K 탄을, 이스라엘에는 WRSA-I 탄을 각각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군사전략이 변경되면서, 타국에 보관하는 WRSA 탄을 모두 폐기하고 필요시 군수물자 수송선에 실어 전장에 바로 투입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2005년 WRSA 폐기법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발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군은 한국에 WRSA로 비축해 두었던 60만 톤, 5조 원 규모의 280종 탄약과 미사일을 한국에 거의 고철값 수준으로 넘기게 되었습니다. 미 본토로 가져가도 관리비용 때문에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운송비와 폐기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공짜에 가깝게 한국에 내준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군이 보유한 155mm 포탄 160만 발이 한국에 이전되면서, 한국의 155mm 포탄 보유량이 기존 200만 발에서 360만 발로 대폭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양국 간 포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소련의 152mm 포탄을 사용했는데, 우크라이나에는 포탄 공장이 없어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었습니다. 

이에 우크라이나에 소련제 포탄이 고갈되자, 미국이 160문, EU가 100문 이상의 155mm 야포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EU는 야포 지원과 함께 미군이 150만 발, EU가 135만 발의 155mm 포탄을 추가로 보내기로 했지만, EU는 135만 발 중 35만 발밖에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하루에 3천 발 가량의 155mm 포탄을 소모하고 있어 한 달치 소모량이 10만 발에 달합니다. 전쟁이 2년 이상 지속되면서 250만 발 이상의 155mm 포탄이 소모되자, 미국은 비축분 150만 발과 이스라엘에 넘겨줬던 WRSA-I 155mm 포탄 30만 발까지 우크라이나에 보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포탄까지 거의 소모되자 미국은 한국에 넘겨줬던 WRSA-K 160만 발 중 50만 발을 대여해 갔습니다. 대여라고 했지만 사실상 판매에 가까웠습니다. 한국은 WRSA-K 155mm 포탄 160만 발 중 50만 발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넘겨줬지만, 미국은 그 포탄을 돌려주는 대신 한국 방산업체에서 생산한 신품 포탄으로 교체하기로 계약했습니다.

WRSA-K는 원래 미국 포탄이었지만 고철값에 가깝게 한국에 매각되었기에 한국 소유가 맞습니다. 포탄도 유효기간이 있어 폐기되어야 하는데, 1974년부터 1978년 사이에 축적된 오래된 WRSA-K 포탄을 넘겨주고 신품으로 교체하는 조건이었습니다. 

한국군은 기존에도 200만 발의 155mm 포탄을 보유한 상황이었고, WRSA-K로 160만 발을 추가로 받았기에 전력상 큰 문제는 없는 수량이었습니다. 계약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155mm 포탄은 풍산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2023년 5월 풍산이 언급된 이후 풍산의 주가도 상당히 오르고 있습니다. 한편 2차대전 당시 미국에는 155mm 포탄 생산 공장이 86개나 있었지만, 현재는 2곳만 남아 연간 9만 발 정도를 생산하는 수준입니다. EU에도 155mm 포탄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곳이 없습니다.

미군의 경우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간전 등 2차대전 이후에도 전쟁을 많이 치렀지만 포탄 사용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항공전력이 우세했기에 재래식 포탄보다는 미사일과 폭탄 위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상군의 포격전이 주를 이루면서 155mm 포탄이 엄청나게 소모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의 2개 155mm 포탄 공장들은 생산량을 월 2만 발까지 늘렸지만, 우크라이나의 월 10만 발 소모량에 크게 부족합니다. 미 육군은 월 9만 개 구매 예산 지원을 요청 중이지만, 전쟁 지속 기간을 가늠할 수 없어 업체들이 시설 확장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번 전쟁이 끝나면 미국과 EU 등은 소모된 155mm 탄약 재고를 다시 보충하려 할 것입니다. 전쟁 중 포탄 부족을 겪었던 만큼 기존 30일치가 아닌 45일 혹은 60일치 재고를 비축할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155mm 포탄 가격은 미국 수출가 기준 1발당 800달러 정도인 반면, 한국은 100만원 내외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년에 미 국방부 기밀문서가 유출되어 이슈가 되었는데, 이 문서에는 한국과 관련된 탄약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관계자들 사이에서 33만 발의 155mm 탄환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한국이 탄약을 미국으로 보내면 미국이 그것을 우크라이나에 바로 보내게 되어 부담스러우니, 한국은 폴란드에 탄약을 판매하고 폴란드가 저장한 후 자체 보관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방안이 거론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풍산은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에 K9 자주포 155mm 포탄을 2년간 1,647억 원어치 공급한다고 공시했습니다. 155mm 포탄은 탄두, 신관, 장약이 한 세트인데 풍산은 탄두만 만들어 한화에 넘기고, 한화가 완제품을 폴란드에 납품하게 됩니다. 100만 원 내외의 포탄 가격 중 탄두 가격이 40만 원 정도라면 1,647억 원 규모는 2년간 40만 발 공급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폴란드와 K9 포탄 공급 계약은 10만 발인데, 40만 발이 납품되는 것으로 보아 나머지 부분이 기밀문서에 거론된 33만 발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55mm 포탄 생산업체가 세계에 몇 곳 없다 보니 풍산은 5년 이상 풀가동해도 수주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2024년 5월 현재도 여전히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한국산 105mm 포탄 지원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우크라이나도 105mm 포를 보유하고 있어 한국이 가지고 있는 105mm 포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CSIS 보고서는 이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한국군이 보유 중인 105mm 포탄을 미국을 통해 우회 지원하고, 미국이 155mm 포탄으로 상환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정리하자면 폐기기한이 임박하고 인기 없는 4천 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주면, 잘나가는 신상 7천 원짜리 도시락을 대신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이 들어온 셈입니다. 비축분에 큰 문제가 없다면 솔깃한 제안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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