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요일

금리 인하 국면에 주목받는 보험사와 워런 버핏의 전략

https://www.yna.co.kr/view/AKR20240516030800009?input=1195m



 워런 버핏이 비밀리에 보험사 처브 주식을 사들인 것이 공개되었습니다. 워런 버핏이 뜬금없이 보험사 주식을 매수하는 이유를 추정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2년 9월, 새로 영국 총리가 된 트러스는 430억 파운드의 감세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감세안에는 세금만 줄이는 내용만 있었을 뿐, 줄어드는 세금으로 인한 재정 보전 방안은 전혀 없었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87503&plink=ORI&cooper=NAVER


시장은 이를 정부가 "빚내서 돈을 엄청 쓸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결국 국채를 대량 발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뭐든지 흔하면 가격이 싸지고 귀해지면 비싸지는 논리가 여기에도 적용됐습니다. 영국이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국채가 흔해지고, 국채가격이 내려가면서 국채금리가 오르리라는 것이 시장의 합리적인 예상이었습니다.

실제로 마이너스 0.156%였던 국채 금리가 일시에 4.398%로 급상승했습니다. 영국 국채금리가 오른 것은 곧 국채 가치가 떨어져 기존 국채 보유자들이 손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새로 국채를 산다면 4.398%의 높은 이자를 받지만, 기존에 1%도 안 되는 낮은 이자의 국채를 가진 이들은 앉아서 평가손실을 보게 되는 셈입니다.



미국 국채 금리 역시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 은행의 채권 손실이 540조 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은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장기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어마어마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에서도 연기금을 제외하고 장기국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 보험사들입니다. 한국은행 추산으로 국내 보험사들이 336조 원 규모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숫자를 하나 알려드리면, 한국은행은 금리가 1%p 오르면 보험사의 채권 평가손익이 36조 원이나 변동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기준금리는 2022년 3월 0.25%에서 5.5%까지 무려 5.25%나 올랐습니다. 따라서 미국 기준금리가 0.25%에서 5.5%로 오르면 국내 보험사들의 채권 평가손실은 189조 원까지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왔으며, 이는 한국은행이 직접 계산한 수치입니다.



물론, 보험사들은 자산과 부채를 어느 정도 맞춰놓고 있습니다. 채권에 평가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 채권에서 나오는 이자로 보험금을 지급할 돈은 일정 부분 매칭시켜 놓은 상황입니다. 이는 아파트 실거주자가 보유한 아파트 시세가 폭락했더라도 계속 거주할 예정이라면 당장은 문제가 없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보험사가 큰일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보험사들은 채권 평가손실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해도 괜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보험사가 금리가 오르면 다른 부분에서 이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보험사들이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에 받아놓은 고금리 보험상품들입니다. 금리가 높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보험사에서 판매한 저축성 보험 상품의 최소 보장이율이 7%대에 달했습니다. 이런 고금리 저축성 보험의 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해 저금리 시기에 보험사는 큰 손실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에 보험계약자들도 이런 이점을 알기에, 고금리 저축성 보험 상품은 절대 해약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23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시장금리가 많이 상승하자, 과거 고금리 저축성 보험들의 손실이 줄어들고 일부는 이익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채권 평가손실이라는 마이너스 요인과 고금리 보험 손실이 감소하는 플러스 요인이 동시에 발생한 것입니다.

보험사들은 금리 변동에 따라 마이너스와 플러스 요인이 공존하므로, 이런 변동이 생기더라도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리 상승 때 플러스 요인이 없고 채권만 많이 보유한 곳은 금리가 빨리 내려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진 중국, 일본과 개별 기업으로는 미국 지방은행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들이 겪는 채권 평가손실이 SVB 은행 파산 사태처럼 미국 지방은행 위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SVB 은행은 저금리 시절 포트폴리오에 많이 편입한 미국 국채가 금리 상승으로 평가손실이 커지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일반 상황이었다면 SVB는 보험사처럼 채권을 만기 보유로 계정 변경하며 버텼을 것입니다. 하지만 뱅크런 소문이 돌자 예금 인출에 대비해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고, 장부상 평가손실이 실제 손실로 확정되며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채권을 많이 보유한 곳들은 저금리 시절 매수 채권의 평가손실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한국 보험사들은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과거 고금리 보험 상품 가입 고객들이 해약하고 많이 빠져나갔습니다. 보험사들은 채권 손실에 대해 만기 보유로 회계처리를 바꿔 시간을 벌었고, 고비용 보험이 빠져나가면서 수익구조가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내려가면 보험사 수익이 종합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채권 손실을 당장 인식하지 않도록 회계처리를 바꿨다고 해서 손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채권 손실도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과거 고금리를 보장한 기존 보험이 대거 해약으로 이탈한 상태에서 채권 손실이 줄어들면 수익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워런 버핏이 작년부터 비밀리에 매수해오다 최근 공개한 처브도 보험회사입니다. 

보험계약자들은 매달 보험료를 내고 몇 년 혹은 몇십 년 뒤 사고나 사망 시 보험금을 받습니다. 보험사는 이 자금을 몇 년에서 몇십 년간 장기로 운용해야 하는데, 장기 채권만큼 적합한 수단이 없습니다.  

금리 상승세가 멈추고 하락하기 시작하면 보유 채권의 평가손실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버크셔가 투자를 발표한 대형 보험사 처브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1,400억 달러 중 1,200억 달러가 채권에 투자되어 있어 84%가 채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다양한 보험사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버크셔는 1960년 보험사 가이코(GEICO)를, 1990년에는 제너럴 리 재보험사를 인수했습니다. 처브에 대한 투자 역시 워런 버핏이 잘 모르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부합합니다.

과거 워런 버핏은 보험사 엘러거니를 116억 달러에 인수하며 '플로트'를 이용한 투자를 언급했습니다. 플로트란 보험료 납부 시점과 보험금 청구 시점 사이에 보험사가 일시적으로 보유하는 자금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책임준비금이라고 부릅니다. 워런 버핏은 이 플로트를 자금조달 비용이 적게 드는 저비용 투자 방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처브 투자 역시 워런 버핏이 익숙한 보험업에 대한 투자이며, 장기적 상향세와 낮은 주가 등 그의 투자 원칙에 부합합니다. 워런 버핏이 일본 기업에 투자한다면 보험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워런 버핏의 처브 투자는 금리 인상이 멈추고 인하 국면에 들어서면서 장기 채권 보유 기업에 투자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 판단입니다. 아직 이런 분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참고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관심있을만한 비슷한 주제의 포스팅들:

에너지 대전환 시대, 핵융합과 SMR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

샘 알트만의 에너지 혁신: 소형원자로(SMR)와 사용후 핵연료의 재활용을 향한 도전 

Fusion Frontier: Korea's KSTAR Achievements and the Global Quest for Clean Energy

벤츠의 내연기관 시대 연장과 전기차 확산의 우여곡절

금리 정책의 역사적 교훈과 파월 의장의 딜레마 (feat. 미국 금리 인하의 행방)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