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금요일

홍콩 국가보안법 강화, 자금과 기업의 대탈출 시작되나

 2024년 3월 23일부터 반정부 행위를 처벌하는 홍콩 보안법이 시행됩니다. 이는 2020년 5월 28일 중국 전인대 투표로 시행된 홍콩보안법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입니다. 강화된 보안법에 따르면 외세와 결탁하면 최대 14년, 외세와 함께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퍼트리면 10년까지 징역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홍콩 국가보안법 오늘부터 시행…"여행자도 주의해야"



외세란 정부와 정당, 국제기구,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해외 기관, 이들과 연계된 기구 및 개인을 말합니다. 문구가 모호해 그냥 마음먹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규정입니다. 홍콩 보안법에 해당되면 법원의 영장이나 검찰의 기소 없이 체포될 수 있고, 변호사 선임도 제한될 수 있어 외국인이 홍콩에서 일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38조입니다. 38조는 홍콩 영주권이 없는 자가 홍콩 밖에서 이 법을 위반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속인주의도 속지주의도 아닌, 전 세계 어떤 국가 사람이라도 처벌할 수 있는 초법역외적용 조항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한국에서 네이버 블로그에 홍콩과 중국을 비방했다면 처벌 대상이 됩니다. 물론 한국 거주자를 직접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이나 홍콩을 방문하거나 경유할 경우 체포 가능합니다. 홍콩을 가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서라도 홍콩을 경유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홍콩의 경유지 기능마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에 2020년 5월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인들과 거주 외국인들이 홍콩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홍콩의 외국 기업들은 대부분 싱가포르와 도쿄로 지사를 이전했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아시아 거점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홍콩인들은 영국, 캐나다, 미국, 일본 등으로 이동했지만 일부는 한국으로도 들어왔습니다. 신문 기사에서는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온 것으로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홍콩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중국이 2017년 9월 1일부터 중국인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막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2017년 9월 이전에는 중국인들이 제주도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제주도는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했고 2010년부터 부동산 투자 이민제가 시행되어 영주권을 주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는 5억원이 넘는 관광지 콘도, 펜션, 호텔 등을 구입하면 F-2 비자를 발급해주고, 그 부동산을 5년 동안 계속 보유하면 F-5 영주권 비자로 바꿔주는 제도였습니다.


구입한 부동산에 실제로 거주할 필요는 없고, 1년에 한 번 이상만 한국에 방문하면 되었습니다. 제주도에 부동산을 사놓고 가끔 여행을 오거나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다 5년 후 영주권이 생기니 매력적이었습니다. 5년 후 영주권을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비롯해 한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전국 어디에서나 거주하며 부동산 매매와 경제활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사교육이 금지되자 제주도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중국인들까지 가세하면서 제주도 부동산 인기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제주도에 5년간 돈을 묻어뒀다가 영주권을 받고 그 돈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는 것이 2010년대 유행이었습니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는 제주도 외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등에서도 시행되었지만, 무비자와 카지노가 있는 제주도가 가장 인기였습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중국 당국이 해외 부동산 투자를 막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해외에서 10,000위안 이상 현금서비스나 카드결제 시 은행이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고, 개인의 해외 인출한도를 연간 10만위안으로 제한했습니다. 5만달러 이상 환전에는 특별허가를 받아야 했고, 500만위안 이상 불법 외환거래 시에는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했습니다. 기업의 해외 부동산 투자도 규제하여 해외투자 민감업종에 부동산을 포함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제주도 부동산을 중국인들이 집중 매입하던 것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미국, 호주,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중국인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2017년을 기점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주춤하던 중국인들의 한국 부동산 구입은 2019년부터 서울 강남, 용산 등 중심지역 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다시 증가했는데, 이들은 사실 홍콩인들이었습니다.



홍콩은 영국 통치하에 자유민주주의로 자라온 홍콩 원주민과 중국에서 넘어온 중국인 집단, 두 세력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문제는 중국에서 넘어온 중국인 세력이었는데, 시진핑 지도부에 의해 기존 상하이방 세력이 적폐로 몰리며 청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진핑이 부패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상하이방을 잡자 이들 주력이 엄청난 자금을 가지고 홍콩으로 건너갔습니다. 머릿수에서는 홍콩 원주민에 밀렸지만 자금력으로 빠르게 홍콩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중국으로 압송되는 일이었는데, 홍콩의 범죄인인도법 개정이 그 두려움을 건드렸습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발단은 주민들의 민주화 열망이었지만, 중국으로 끌려갈 상하이방 세력의 지원도 한몫했습니다. 당시 홍콩 총리 캐리람은 시진핑에 의해 임명된 인물이었는데, 상하이방은 이를 끌어내리고 중립 총리를 세워 시진핑 이후를 노리려 했습니다.


시진핑은 상하이방이 너무 커져 있고, 싱가포르가 홍콩의 기능을 일부 가져가면 홍콩 없이도 중국경제가 돌아갈 것으로 보고 강제진압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의 시위 강경 진압에 상하이방 세력의 자금들이 홍콩을 탈출하기 시작했고, 그 중 아주 일부가 한국에도 들어왔습니다. 



이들 큰손들이 움직이면서 강남의 백억대 펜트하우스까지 줍줍 사들이는 모습이 한동안 눈에 띄었죠. 하지만 중국인과 홍콩인들의 주 관심사는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1순위는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이었고, 2순위는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화교가 경제를 장악하고 있어 언어 등 생활에 지장이 없는 나라들이었습니다.


본토와 홍콩 중국인들은 일본 부동산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낮은 범죄율과 맑은 공기, 엔화 가치 하락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부동산의 외국인 투자 규모는 도쿄와 오사카에 집중되었고 작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부동산 4만 달러 이상 투자하고 직원 2명 이상이면 투자비자를 내주는 제도를 만들어 연간 1만 6천 명의 투자비자 발급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홍콩 보안법 강화로 인한 홍콩인들의 대규모 이동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 무렵 떠날 만한 이들은 대부분 홍콩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법안으로 홍콩에 남아있던 외국인들과 외국인 투자자금들이 홍콩을 빠져나갈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돈이 빠져나가면서 증시 상승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중국과 홍콩 증시는 정부가 보험사들을 동원해 주식을 사들이며 반짝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계속 내려가던 홍콩 H지수도 정부 주도 매수가 주춤하면 다시 하락할 공산이 큽니다. 양회 전후로 주가를 부양할 기회가 있으므로, 홍콩과 중국 주식에 물려있다면 이때 exit타이밍을 잡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 마디로 홍콩H지수는 살짝 고개를 들고는 있지만, 부유층과 외국 자금이 해외로 계속 빠져나가고 있어 상승세로 전환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홍콩 보안법 시행에 따라 앞으로 해외 여행 시 홍콩 경유에도 신경 써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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