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요일

생산량 vs 밥맛, 농민과 정부의 대립 - 신동진 쌀 사태

한국에서도 맛있는 밥을 드시고 계신가요? 일본을 방문해보셨다면 식당에서의 밥맛이 한국보다 나은 것 같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을겁니다. 일본이 한국보다 밥맛이 좋은 품종의 쌀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한국 쌀이 일본 쌀에 못지않게 맛있는 밥맛이 나도록 많이 개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쌀 자체에서 맛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데, 밥맛의 차이가 나는 것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질소 비료 사용량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밥맛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쌀의 단백질 함유량인데, 단백질이 적을수록 밥맛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쌀의 단백질 함유량은 질소비료를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따라 대부분 결정됩니다.



1985년 농촌진흥청에서 동진이라는 쌀 품종을 개발했고, 1999년에는 이를 개선한 신동진 품종을 내놓았는데 이 품종이 대히트를 치게 되었습니다. 신동진은 쌀알이 일반 품종보다 1.3배 크고 무거웠는데, 이는 생산량이 많다는 뜻이었죠. 실제로 기존 품종 대비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 신동진이 한국 재배량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생산량이 많아지자 신동진을 재배하는 농민들의 소득도 늘어나게 되었고, 농민들은 생산량 증가가 곧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신동진 재배 시에는 일반 쌀보다 훨씬 많은 양의 질소비료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쌀은 300평당 7 kg의 질소비료를 주면 단백질 함유량이 6.5% 미만으로 최상의 맛이 나지만, 농촌진흥청의 표준농법에서는 9 kg까지 사용하도록 제시했고 신동진에는 13~15 kg의 질소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했습니다.



신동진은 너무 강하게 품종개량이 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었습니다. 질소비료를 15 kg까지 사용해도 신동진은 쓰러지지 않고 더 많은 생산량을 낼 수 있었지만, 반대로 질소비료를 많이 쓰면서 자연스럽게 밥맛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쌀은 단백질 함량에 따라 '수', '우', '미'로 등급을 나누는데, 밥맛이 좋다는 품종들은 대부분 단백질 6.0% 이내인 반면 신동진은 7.6%로 '미'등급입니다. 맨밥으로 신동진을 먹으면 찰기나 촉촉함, 부드러움이 없어 밥맛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동진이 결코 맛없는 쌀 품종은 아닙니다. 쌀알이 일반 품종보다 30% 크다 보니 밥을 지을 때 고온에서 잘 조리하면 꽤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미 지은 밥을 강한 불로 볶음밥이나 덮밥으로 만들면 좋습니다. 맛집에서도 청국장 등 맛이 강한 음식 곁들임용으로 신동진을 사용합니다.

일반인들은 쌀알이 크니 좋은 쌀이라고 여기고 신동진을 선호하지만, 실제로는 밥맛을 내기 위한 특별한 조리법이 필요한 품종입니다. 중국집에서 신동진을 많이 쓰는 이유도 볶음밥, 덮밥 용도로 알맞기 때문입니다.

한편 한국인들은 점점 쌀을 적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논 면적이 천천히 줄어들고는 있지만, 쌀 소비에 대한 감소 속도가 훨씬 빨라지면서 쌀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쌀 가격 하락으로 인한 농가 소득 피해를 방지하고자 매년 몇십만 톤의 쌀을 매입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입한 쌀에 대한 소비는 더디기만 합니다. 2년 이내에 소비되는 쌀은 고작 7% 정도에 불과하고, 93%는 3년 이상 창고에 묵혀지게 됩니다. 3년 지난 묵은 쌀은 소주 주정용으로, 4년 지나면 가축 사료용으로 팔리고 있죠. 2018년 20 kg에 54,540원을 주고 매입한 쌀이 2021년에는 주정용 8,000원, 2022년에는 사료용으로 4,000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쌀 1만 톤을 매입하면 판매 손실 205억 원, 관리비용 67억 원 등 총 286억 원의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2021년 34만 톤, 2022년 45만 톤, 2023년 40만 톤의 쌀을 구입해 비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쌀 소비 감소로 인한 손실이 계속 커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생산량이 많지만 밥맛에 단점이 있는 신동진을 개량한 신품종 '참동진'이 농촌진흥청에 의해 내놓였습니다. 참동진은 신동진과 비슷하지만 병충해에 강하고 밥맛이 더 좋게 개량되었습니다. 

하지만 신동진 재배 농민들은 정부가 공공비축미에서 신동진을 참동진으로 바꾸는 데 크게 반발했습니다. 밥맛에 따른 수매가격 차별화가 없다 보니 생산량이 많은 신동진을 농민들이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상 재배 조건에서 참동진이 생산량에서 앞서지만, 신동진은 질소비료를 과다 사용해 더 많은 생산량을 내고 있었습니다.

참동진은 일본 품종처럼 질소비료 과다 시 쓰러지고 품질이 떨어지는데, 농촌진흥청이 표준농법보다 적은 7 kg의 질소비료만 사용하라고 권고하면서 생산량 증가에 한계가 생긴 것입니다. 소득 관점에서 보면 농민들의 반발이 합리적이었습니다. 정부가 품질과 무관하게 일정가격 이상 무조건 수매하다 보니 맛있는 쌀보다 생산량 많은 쌀을 선호하게 된 것이죠. 




결국 농민들의 강한 반발로 신동진을 참동진으로 교체하는 계획이 3년 유예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20 kg당 54,540원에 구입한 쌀이 4년 만에 4,000원에 팔리는 등 쌀 관련 정책에서 많은 세금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정책 수립 시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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