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요일

한국형 전투기 KF-21 프로젝트, 인도네시아와의 진통

 KF21과 관련하여 인도네시아가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는 1966년부터 32년간 군부 출신 수하르토의 장기 독재 체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수하르토 정권은 정당들을 통폐합하여 1개 여당과 2개 야당 구도를 만들었는데, 2개 야당 또한 정부가 만든 정당이었기에 제대로 된 야당은 존재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하면서 인도네시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마이너스 13%의 역성장을 기록했고, 환율이 5배가량 폭등하는 등 경제가 휘청였죠. 이에 따라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학생 4명이 군에 의해 살해되자, 수도 자카르타가 분노한 군중들로 인해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수하르토 대통령이 사임하게 되었고, 1개 여당과 2개 야당 체제 또한 무너지면서 인도네시아는 자잘한 다당제 국가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민간인 출신의 조코 위도도는 2014년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당선되어 2024년까지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의 정당 구조가 군소 정당 위주의 다당제이다 보니, 여당은 의석수가 가장 많은 1당이기는 하지만 20%의 의석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여당은 여러 정당과 연합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야당 쪽에도 많은 장관 자리를 내주게 되었죠.

그래서 야당 대표인 프라보워가 국방부 장관이 된 것입니다.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 재벌 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인도네시아 은행을 설립했고,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수하르토의 사위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하르토 정권 때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어두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1998년 수하르토가 물러나자 요르단으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요르단에서 재벌 인맥을 동원해 기업가로 변신한 프라보워는 정국이 잔잔해지자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27개 기업을 운영하며 정계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하지만 독재자 수하르토의 오른팔이라는 이미지 탓에 지지도를 높이기 어려웠죠. 이에 2012년 조코 위도도의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비용을 댔고, 위도도 역시 인기를 얻어 2014년 대선까지 나가게 됩니다. 

프라보워는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에게 아슬아슬하게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승리한 위도도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야당 대표 프라보워를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프라보워는 국방부 장관직을 차기 대선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코 위도도 정부가 체결한 KF-21 공동개발 사업을 중단시키고, 군사력 강화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자 했습니다. 리베이트가 만연한 인도네시아에서 리베이트를 받기 어려운 KF-21 사업은 정치권에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원했던 것은 전투기 개발 기술과 48대의 KF-21 도입, 그리고 리베이트였습니다. 하지만 리베이트를 요구하지 않는 조코 위도도 성향상 정상적인 공급계약이 체결되었죠. 1조 7천억 원에 제작기술과 시제기 1대를 가져가고, 48대는 인도네시아에서 자체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프라보워 장관 취임 후 48대 자체 생산 대신 전투기를 직접 사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한국에 분할 납부하기로 한 개발 분담금 지급도 중단시켰죠. 이는 분양 계약 후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을 미루는 꼴이었습니다. 

프라보워 입장에서 48대 KF-21 자체 생산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제조기술만 빼먹고 러시아 SU-35와 프랑스 라팔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전에서 SU-35 성능이 기대에 미치자 미국의 F-15 36대를 139억 달러에 구매 신청했고 승인받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기존 노후기 50기 대체 및 50기 추가 확보해 총 100기 전투기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프랑스 라팔 42기, 카타르 중고 미라지 12기를 계약해 F-15 36기만 더하면 90기가 확보되는 셈이었죠. 이렇게 중도금 납부 거부와 배째라를 펼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F-15 전투기 구매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도네시아 측은 보잉사에 구매대금을 분할 지급하자고 제안했지만, 보잉사는 인도네시아가 한국에 KF-21 대금을 연체 중인 것을 감안해 분할 지급을 거부하고 선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수도 이전 등 돈이 많이 들어갈 일이 많아 보잉에 선지급이 어려워지자 KF-21 사업이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이죠.

인도네시아는 갑자기 시제기로 제작된 자국 분담분 KF-21 1기를 받겠다며 기술자를 한국에 파견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연체된 중도금 전액 지급이 선행되어야 시제기 인도가 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현재 파견된 32명의 기술자들은 OJT 수준 교육만 받고 있어 핵심기술 접근이 차단된 상황입니다.  

한국 국방부 입장에서는 기술이나 시제기를 인도하지 않은 이상 우리 돈으로 KF-21을 완성한 뒤 다른 곳에 팔아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UAE, 폴란드 등 KF-21을 원하는 곳도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인도네시아에 KF-21을 판매할 경우 실전 데이터 축적을 통해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반군 활동으로 실전 투입 가능성이 높고, 수도 이전 사업에 한국 건설사 대규모 수주 기회가 있으며, 세계 1위 니켈 부국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짜증나기는 하지만 달래가며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수출길 없던 T-50 초음속 훈련기 16대를 처음 사준 단골 손님이기도 합니다. 이를 계기로 필리핀, 태국 등으로 추가 수출되었고, 잠수함 3척도 인도네시아가 구매했습니다. 국방력을 빠르게 기르는 잠재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지만, 1만 7천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상 육군보다는 공군과 해군 전력이 더 필요한 실정입니다. 과거에는 국제 분쟁이 많지 않아 소규모 해군만을 보유했지만,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따라 최근 공군과 해군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예산이 11조 원 정도에 불과해 매년 2조 원가량만을 무기 구입비로 지출하고 있어 예산이 빡빡한 게 문제입니다. 프랑스 라팔 전투기 구입 대금 10조 원도 예산이 아닌 국가 채권 발행으로 충당했을 정도로 여유가 없는 나라입니다.

한편 한국 공군은 2032년까지 노후 F-4/5 전투기를 KF-21 120대로 대체할 계획입니다. 전투기는 대량 생산할수록 단가가 크게 떨어지는 특성이 있어 구매 예산을 절약하려면 수출을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이 필요합니다. 

KF-21은 스텔스가 아닌 일반 전투기의 보급형 모델로,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적당한 성능의 일반 전투기와 스텔스기를 적절히 혼합 운용하는 것이 가성비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F-35 생산을 위해 F-16 라인을 축소한 상황을 감안하면 KF-21 역시 틈새시장을 노려볼 만한 상황인 셈입니다.



KF-21 전투기 개발이 일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KF-21을 보급형 전투기로 발표했지만, 군사전문가들은 내부 무장창을 고려한 설계로 보아 스텔스 전투기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KF-21의 외형은 스텔스기인 F-22와 F-35를 겸비한 모습으로, 두 기체의 장점을 잘 반영했습니다. 

이에 따라 외형만으로도 레이더에 잡히는 면적인 RCS 값이 0.5제곱미터 수준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비록 완전한 스텔스 수준은 아니지만 중국 J-20과 비슷한 수치입니다. 스텔스 도장과 무장 은폐 등 업그레이드를 거치면 F-35 수준의 스텔스 성능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2026년 개발 완료 후 2027년부터는 '완전 스텔스화+무인기 편대화' 등 6세대 전투기로의 개량 사업도 검토 중입니다. 현재 음속 돌파에 성공했고 2024년 5월에는 EU가 공동 개발한 미사일 미티어의 실사격 훈련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애초에는 미제 미사일 장착을 계획했지만 수출 허가가 나오지 않자 미티어와 IRIS-T를 탑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이 뒤늦게 수출을 허가해 KF-21은 미제 미사일과 유럽제 미사일을 모두 탑재할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국산 공대공미사일까지 개발되면 수요국 니즈에 맞는 폭넓은 옵션 제공이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인도네시아는 2월 14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고, 야당 대표 프라보워가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여당의 조코위 현 대통령 지지율이 80%가 넘는 가운데 프라보워가 대통령에 오른 것은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을 러닝메이트로 맞아들인 덕분이었습니다. 

여당에서는 이를 두고 야당과의 야합이라고 공격했지만, 현직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연합한 탓에 압도적 지지율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조코위 대통령이 장남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무리수를 둔 점에 대해서는 여론의 비판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상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가 되려면 만 40세가 넘어야 하는데 기브란은 30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지방자치단체장 경력자는 연령제한 없다'는 해석으로 기브란이 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해석을 내린 헌재소장이 조코위 대통령 와이프의 친동생이라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관전 포인트는 프라보워 신임 대통령과 조코위 전 대통령 간의 권력 다툼입니다. 조코위가 장남을 부통령으로 앉혔지만 권력욕이 강한 프라보워가 권력을 쉽게 공유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과거 실적을 부정적으로 재평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KF-21 사업에 대해 분담금 지급을 거부하고 독자 행동을 벌였던 터라 향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비 1조 8천억 원 중 2,800억 원 정도만 지급한 상태입니다. 중도금 일정상 1조 800억 원을 받아야 하지만, 개발 기술 100% 이전 외에도 한국 정부 허가 없이 자체 생산분을 수출할 수 있는 권리까지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현재 KF-21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폴란드와 UAE입니다. 폴란드는 이미 한국 방산 무기를 다량 구매했고, 최근에는 FA-50 훈련기 인수에 앞서 한국 국방부가 KF-21 시뮬레이터까지 공개하고 조종 경험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인도네시아 국기가 그려진 KF-21 기체 사진에서 인도네시아 국기를 가린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가 분담금 1조 8천억 원 중 6천억 원만 납부하고 기술이전도 3분의 1만 받겠다는 제안이 나왔고, 5월 8일 1천억 원을 추가 납부했다는 보도도 있어 합의가 임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네시아가 몇 년 전부터 3분의 1 납부 및 기술이전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실무 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한화오션에서 계약한 잠수함 3척 대금도 몇 년째 지급하지 않아 신용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결국 신용도에 문제가 있는 나라에서 더 문제 있는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KF-21 사업은 적절히 손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대신 현재 관심을 보이는 폴란드, 이집트, 사우디, UAE 등에서 물량을 확보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처음 계약을 잘 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KF-21 제작 자체는 잘 진행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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